ADVERTISEMENT

[남기고] 나의 선택 나의 패션 63. 운명의 실크 <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7면

1974년 미국 뉴욕 맨해튼에 있는 플라자 호텔에서 바이어들을 대상으로 연 패션쇼. 미국인 모델이 입고 있는 핑크색 실크 드레스에 프린트된 나비 문양은 신사임당의 그림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잠사협회가 뜻밖의 제안을 했다. 실크 소비를 촉진하기 위한 패션쇼를 열어 달라는 것이다. 나는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실크 옷을 입을 만한 형편이 되지 않으니 차라리 미국 시장을 겨냥해 뉴욕에서 바이어 초청 패션쇼를 여는 게 더 낫지 않겠느냐고 했다. 잠사협회 회원인 견직업자들은 수차례 회의 끝에 내 제안을 받아들였다.

나는 더 바빠졌다. 패션쇼 규모를 결정하고 예산을 짜는 게 급선무였다. 잠사협회 예산만으로는 턱없이 모자라 상공부에 도움을 요청하기로 했다. 모든 계획서를 들고 상공부 장관을 찾아가 우리의 취지를 밝혔다. 실크 옷을 수출하면 부가가치가 크게 증가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우리나라의 수출 섬유는 대부분 외국에서 들여온 원료를 가공한 것이기 때문에 부가가치가 기껏해야 10% 안팎이었다. 상공부 측은 우리 제안을 의외로 쉽게 받아들였으며, 즉석에서 코트라에 전화를 걸어줬다. 코트라가 2만 달러를 지원하고 뉴욕 현지 업무까지 맡기로 해 일이 훨씬 수월해졌다. 그때 상공부 장관이 한 말을 아직도 기억한다. "2만 달러를 지원해 줄 테니 앞으로 월 10만 달러어치를 수출하도록 하세요."

계산해보니 10만 달러 수출 실적을 올리려면 옷 한 벌의 수출가를 50달러만 잡아도 매월 2000벌을 팔아야 한다는 셈이 나온다. 한 가지 소재로 옷을 만들어 매월 2000벌을 판매해야 한다는 것은 디자이너에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구나 실크로 기성복을 만들려면 여러 가지 어려움이 따른다.

우선 라인 작업이 가능하도록 디자인을 해야 한다. 옷을 만들 때 수작업이 많으면 비용이 늘어난다. 수출을 하려면 한 벌 한 벌의 원가 개념이 중요하기 때문에 비싼 실크 원단을 절약하는 기술이 필요했다. 파리 '프레타 포르테(기성복 전시회)'에서 뉴욕으로 수출해본 경험이 나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소재로는 크레이프 데신(CDC)이 가장 시장성이 밝았고, 산퉁 실크와 자카드가 그 뒤를 이었다. 나는 실크 생산 공장을 돌며 소재를 찾아내고 품질을 살펴보았다.

두 번째로는 염색과 프린트다. 시설보다 기술과 정성이 더 중요한 실크 프린트는 퍽 까다로운 작업이다.

온갖 어려움을 겪었으나 다행히 마음 먹은대로 컬렉션을 준비했다. 장소는 맨해튼의 플라자 호텔로 잡았다. 일류 백화점 바이어들과 패션 기자, 대사관 관계자들을 초대했다. 플라자 호텔 스위트에 짐을 푼 나는 낮에는 모델을 선정하고 저녁에는 다림질을 했다. 다행히 한국에서 갖고 온 샘플들이 모델들에게 잘 맞았다.

패션쇼에서 선보일 의상은 50점으로 정했다. 1인당 200달러의 출연료를 주는 조건으로 여덟 명의 모델을 뽑았다. 이 중 동양인과 흑인이 한 명씩 포함됐다. 마지막으로 음악과 사회자를 결정했다.

노라 ·노 (디자이너)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