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미 스칼라피노박사에 들어본 “한반도 앞날”/창간 26돌 특별대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남북교류·신뢰쌓여야 통일온다/평양도 변화의 필요성 절감/한국은 민주화에 더 힘써야/일­북한관계 진전 기대… 중국 경제개혁 불가피
한반도 주변정세가 급변하고 있다. 북한은 분단고착이란 반대이유를 접어두고 한국과 나란히 유엔에 가입했다. 미국·일본과의 관계개선도 적극 모색하고 있다. 소련의 변혁은 또 한반도에 어떤 파장을 미칠지 주목된다. 남북한관계와 한반도 주변상황에 대한 분석과 전망을 동북아·한반도문제 전문가인 전 캘리포니아주립대(버클리) 동아시아문제연구소장 로버트 A 스칼라피노박사(72)와 문창극 중앙일보 워싱턴특파원의 대담을 통해 짚어본다.<편집자주>
­지난주 남북한이 유엔에 가입한 것은 한반도 상황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 상황 전환입니다. 이번에 이루어진 형태의 남북한 동시가입은 오랫동안 북한이 반대해오던 것입니다.
이 태도를 바꾼 이유를 어떻게 보십니까.
『북한은 싫지만 어쩔 수 없이 유엔에 가입한 것입니다.
북한이 태도를 바꾼 것은 중국의 영향력 때문이라는 것이 거의 확실합니다.
한국이 유엔에 단독으로라도 가입하려 하는데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 중국이 비토권을 행사하기 어렵다는 점을 북한에 밝혔기 때문이지요.』
­남북한 유엔동시가입이 앞으로 남북한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십니까.
『한반도 정세전반에 매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는 북한을 세계의 무대로 끌어내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유엔은 남북한에 새로운 대화의 장을 제공할 겁니다.
비록 북한이 중국의 압력때문에 이번 결정을 했으나 이는 평양정부가 한국 서울정부의 정통성을 인정한 획기적인 조치라고 볼 수 있습니다.』
­금년봄 북한을 다녀오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북한의 대외정책변화등 낌새를 느끼신 것은 없습니까.
○유엔에서 대화필요
『북한은 대내외 상황변화때문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소련과 동유럽에서 레닌이즘의 붕괴,한반도에 대한 소련의 대외정책 변화,한국에 무역대표부를 설치하고 문화교류를 확대하는 등 사실상 두개의 한국정책을 추구하고 있는 중국의 움직임이 북한정권을 흔들어 놓고 있지요.
또 내부적으로 북한이 추구했던 자급자족 경제의 취약성이 확실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2년째 계속되는 흉작도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평양 지도자들은 변화,특히 외교정책상 변화의 필요성을 느껴왔습니다.
고립은 권위주의의 힘만 더 강화시켜 주는 것 아닙니까.
우리는 이같은 북한의 움직임을 환영해야 합니다.』
­앞으로 한반도 정세에 큰 영향을 미칠 요소중의 하나는 북한의 권력계승문제라고 봅니다. 김일성주석은 아들 김정일에게 언제 권력을 이양할 것이며 이 과정에서 어떤 문제들이 야기될 것으로 보십니까.
『북한 정치의 미래를 점친다는 것은 현명치 않은 일입니다.
북한 정치구조 내부에 대한 우리의 지식이 극히 제한된 상황에서 북한정치의 특정문제에 대한 예상을 한다는 것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권력계승이 이뤄질 시점의 북한 내부사정이나 세계정세라는 여러변수를 생각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두가지 가정을 할 수 있겠지요.
먼저 김정일이 궁극적으로 자신의 정통성을 확립하려면 구체적 통치실적을 바탕으로 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결코 김일성처럼 카리스마에 의존하여 통치할 수 없습니다. 김일성은 아들에게 그것까지 물려줄 수는 없습니다.
두번째는 김정일을 따라 새세대의 정치지도자들이 출현하리라는 점입니다. 좀더 나은 교육을 받고 테크놀러지에 바탕을 둔 이들은 혁명 제1세대보다 현대화에 더 우선순위를 둘 것입니다.
북한이 맞게될 새시대는 과연 김정일이 지도자로 살아남을 수 있느냐에 따라 결정될 것입니다. 지금도 김정일과 그의 참모들이 북한의 매일매일 행정업무를 관할하고 있으며,외교업무도 곧 인계할 것이라고 북한소식통은 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북한의 권력승계는 지금도 진행중인 하나의 「과정」으로 파악돼야지 일회성사건으로 봐서는 안됩니다.
김일성의 사망이 북한사회에 큰 충격이 되리라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습니다.』
­북한은 지금 미국과 관계를 개선코자하는 희망을 피력하고 있습니다. 지난번 평양방문때 박사님이 북한측으로부터 받은 특별주문같은 것은 없었습니까.
『북한대변인은 미국과 관계개선을 바란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현재 북경에서 미·북한 양국외교관이 접촉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북한에 핵사찰을 받아들이고 남북대화에 성실히 임할 것등 관계개선 조건을 달고 있지요.
북한으로서도 나름의 걱정이 있습니다.
주한미군과 미군이 보유하고 있는 핵문제등 군사 또는 비군사문제를 둘러싼 미국과 고위대화창구가 없는 점입니다.
북한과 미국의 관계가 개선된다면 한국뿐 아니라 이지역 전체로서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일본과 북한과의 관계는 어떻게 보십니까.
『북한 당국자들은 일본과 관계정상화가 매우 더디게 진행되고 있는데 실망을 표시하고 있습니다. 가네마루(금환신·전일본 부총리)의 방북이후 그같은 협상이 속도가 붙기를 기대했습니다. 경제협력 창구도 열고 소련이 한국을 승인한데 대한 반격을 가하려는 계산입니다.
핵사찰 문제가 해결되면 일­북한관계는 급속히 진전되리라고 봅니다.』
­이와 관련된 문제로 주한미군의 핵문제를 짚고 넘어 가야 하겠습니다.
박사님을 포함,많은 전문가들은 북한의 침공에 대비한 한국내 핵무기는 필요없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비핵화 합의에 기대
또 미국은 이미 핵문제를 남북한이 서로 상의해 처리하라고 일임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한반도의 비핵화가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나는 오래전부터 만일 한국에 핵무기가 배치돼 있다면 한국의 안보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으면서 철수할 수 있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재래식 전쟁의 경우 한미연합사의 전력과 동북아에 배치된 미국의 전력은 북한의 침공에 대해 충분한 억지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남북한이 핵문제를 놓고 합의를 이룰 것을 기대하고 있으며 또 그것이 올바른 방향이라고 봅니다.』
­한소수교가 북한에 어떤 영향을 미치리라 생각하십니까.
북한은 최근 소련의 내외 정치번화에 매우 실망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고르바초프가 사회주의를 배반했다고 보고 있으며,소련이 그들을 팔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북한정권은 이를 공식적으로 밝히는데는 매우 신중합니다. 왜냐하면 북한은 아직도 군사적·경제적으로 소련에 크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북한 대외무역의 50%이상이 소련과 이뤄지고 있습니다.
소련이 앞으로 무역결제는 경화로,그것도 국제시장가격으로 하자고 요구해옴으로써 북한은 큰 고민에 빠졌습니다.』
­북한과 중국과의 관계는 어떻게 전망하시는지요.
『북한은 중국을 훨씬 더 우호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중국은 북한의 「큰형님」 노릇을 해오고 있습니다. 북한의 정치를 칭찬해주고 양국 지도자들이 상호방문하는 등 배려를 하고 있지 않습니까. 특히 소련과 달리 중국의 국내정치상황이 북한과 유사하다는 점도 크게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 지도자들은 중국이 북한을 경제적으로 도울 수 있는 방법이 극히 제한돼 있고,또 비록 가까운 시일안에 한국과 수교하지 않겠지만 「두개의 한국」 정책으로 나갈 것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문제는 북한이 의지할 외부세력이 점차 없어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것이 북한으로 하여금 다른나라로 눈을 돌리게 만드는 요인입니다.』
­보수강경파들의 쿠데타가 실패한뒤 소련은 공산당 활동이 정지되고 연방정부가 무력하게 되는 등 급속한 변화를 겪고 있습니다.
공산주의 종주국 소련의 이러한 변화가 북한에 미치는 영향을 어떻게 보십니까.
『북한지도자들은 소련 쿠데타의 실패를 보고 매우 당황했을 것입니다.
○아직도 “두개의 조선”
그들은 고르바초프를 사회주의의 배반자로,북한과 소련간의 동맹관계를 배신한 인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 소연방이 해체되면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북한의 경제사정은 더욱 곤란해질 것입니다.
북한은 이번 소련사태를 계기로 단기적으로는 국내정치를 더 조여나갈 것이 확실합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북한은 경제개혁에 더 박차를 가할 것으로 봅니다.
북한은 일본과 관계정상화에 대한 욕구가 더 늘어날 것이고 이의 실현을 위해 국제원자력기구(IAEA) 핵사찰을 받는 문제에 좀더 타협적으로 나올 것으로 봅니다.
또 중국도 같은 입장이지만 북한은 사회주의체제를 방어하기 위해 민족주의 노선을 부각시킬 겁니다.
마르크스나 레닌에 대한 언급은 점차 줄어갈 것입니다. 북한은 주체사상 아래 사회주의를,중국은 중국실정에 맞는 사회주의를 외칠 것으로 봅니다. 국제공산주의 노선을 걷던 사회주의국가들이 민족주의노선으로 제도를 바꾸고,시장경제체제의 국가들은 경제적 이유로 국제주의를 택하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소사태후의 중국 사정도 함께 말씀해 주십시오.
『중국 지도부는 상당히 혼란한 감정에 싸여 있을 것으로 봅니다.
북경의 보수지도부는 한편으로는 레닌이즘을 붕괴케 한 주역인 고르바초프가 전복되기를 바랐을 겁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소련보수파가 집권하여 중·소 국경에 무력을 증강시켰다면 그것도 결코 편안치 않을 것이라는 계산도 했겠지요.
북경지도부는 89년 천안문사태는 혼란을 막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다는 점을 계속 국민들에게 설득하는 등 안정을 유지키 위해서는 집중적으로 국민을 세뇌시켜야 할겁니다. 이와 함께 소련 중앙아시아공화국들이 독립을 지향하는 것도 중국에는 큰 부담이 될 겁니다.
비슷한 여파가 신강성의 위구르족이나 국경주변의 소수민족에 미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중국도 스탈린식의 경제전략으로 돌아가기는 이미 불가능하기 때문에 경제개혁은 계속 추진하리라고 봅니다.
­남북한 통일은 언제쯤이나 가능할까요. 또 어떤 과정을 거쳐 통일이 되리라고 보십니까.
『이 시점에서 누구도 한국의 통일을 전망할 수 없다고 봅니다.
나는 통일이 하나의 극적 사건으로 달성된다고 보지 않습니다. 통일은 하나의 「과정」입니다.
제2차대전이후 분단된 나라가운데 오스트리아는 강대국간 협상으로,베트남은 무력으로,독일은 동구 사회주의체제 몰락 덕분에 통일이 됐지 않습니까.
그러나 이 가운데 어느 방식도 한국통일에 적용될 수 있다고 보지 않습니다.
통일을 위해서는 우선 두나라와 국민사이에 경제·문화교류 확대를 통해 신뢰관계가 조성돼야 합니다.
두번째 정치·경제·사회제도들이 각각의 수준에서 진정한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점차 접근할 수 있는 변화가 따라야 합니다.
현재 남북한에 존재하는 제도나 기구들이 상호 수렴되는 쪽으로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레닌주의체제와 민주적 정치체제,시장경제와 국가통제 경제를 그대로 유지하고선 비록 공존은 할 수 있다 해도 결코 통일에는 도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1국가 2체제」라는 공식도 단지 인위적 통일을 낳을 뿐입니다.』
­최근 한국은 북방정책으로 큰 성공을 거두고 있습니다. 평화통일을 달성하려면 앞으로 한국은 어떤점에서 더 노력해야 할까요.
『이 시점에 한국이 해야할 가장 중요한 작업은 민주적 방식을 통해 스스로 힘을 기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첫째,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정치제도를 계속 개선시켜 나가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물론 지금까지 주변에 머무르던 여러 집단들을 정치과정 안으로 끌어들이는 작업이 포함돼야 하겠지요.
○스스로 힘을 길러야
학생·근로자 등이 책임과 권리를 바탕으로 민주체제에 전적으로 참여해야 합니다.
현재 크게 문제가 된 첨예한 지역간 대립도 줄어야 합니다.
민주주의라는 제도는 지배자와 피지배자 양자 모두의 책임을 요구하는 제도이기 때문에 시행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평화적 반대는 허용해야 합니다.
동시에 모든 문제를 거리에서 해결하려 해도 안됩니다.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그것이 폭력수단이 아닌한 반대측의 언론·결사의 자유는 보장돼야 합니다.
경제적으로는 국제시장에서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기술개발에 역점을 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해외의 보호주의 물결을 꺾기위해서도 국내시장을 개방해야 하며 선진공업 경제에 필요한 인프라스트럭처(하부구조)도 발전시켜야 합니다.
이제 한국은 비단 아시아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 힘을 뻗치는 힘을 가진 나라가 됐습니다.
이같은 힘에 상응하는 「책임」을 받아들이는 일이 앞으로 다가올 10년의 과제이며 도전입니다』.<대담=문창극특파원>
□스칼라피노박사 약력
▲1919년 캔자스주 태생 ▲1940년 캘리포니아주 산타바버러대 졸업 ▲1948년 하버드대에서 정치학박사학위 취득 ▲캘리포니아대(버클리) 교수 및 동대학 동아시아문제연구소장 역임 ▲1990년 6월 정년퇴임 ▲현재 버클리대 명예교수 ▲『오늘의 북한』(64년) 『한국공산주의운동사』(72년) 등 저서 다수.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