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 부는 反유대 바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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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지난달 영국 맨체스터 인근 유대인 교당(시나고그)에 방화 사건이 일어났으며, 지난 여름엔 런던의 유대인 공동묘지에서 비난 낙서가 발견됐다. 프랑스에서도 유대인 학교에 불을 지른 사건이 터졌고, 시나고그에 도둑이 들어 책을 찢고 '유대인에게 죽음을'이란 낙서를 남겼다. 전통적으로 유대인에게 우호적인 이탈리아에선 지난 3월 밀라노 한 방송국의 보도책임자로 유대인이 임명됐다는 발표 직후 괴한이 방송센터에 침입, 밤새 유대인을 비방하는 벽화를 그려놓고 사라졌다. 오스트리아에선 젊은 청년 두 명이 유대교 성직자의 머리를 병으로 때리고 발로 차는 폭행을 가했다. 그리스에선 한 작곡가가 유대인을 '악의 뿌리'라고 비난했으며, 독일의 한 국회의원도 "유대인들이 옛 소련의 학정을 주도한 가해자"라고 주장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이 같은 반유대주의적 사건의 배경을 설명해주는 한 단초는 지난달 초 공개된 유럽연합(EU)의 여론조사 결과다. 유럽인의 59%가 '세계 평화의 최대 적'으로 이스라엘을 꼽았다. 이 같은 분위기는 예전의 '유대인 음모론'과 맥을 같이하면서도 조금 다르다.

유대인 음모론은 '유대인이 국제금융과 무기거래 등을 통해 세계를 막후에서 지배하고 있다'는 식의 주장이다. 그러나 최근 일어나는 반유대주의는 '람보 이스라엘'론(論)이다. 이라크 전쟁과 중동권의 분규가 이스라엘, 특히 호전파 샤론 정부에 의해 조장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과거 비둘기파 라빈 총리 시절에 비해 이스라엘에 대한 비난이 높아진 것도 사실이다.

런던=오병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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