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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물운송 비상 서울·부산 육송 16시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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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올들어 시멘트의 내륙 운송가격은 작년 말보다 무려 70∼80%나 올랐다.
지난 4월부터 시멘트운송업체와 시멘트생산·수입업체간에 벌어진 밀고 당기는 신경전 끝에 생산·수입업체들이 손을 들고 만 것이다.
이에 따라 경인지역의 크고 작은 운송업체들은 t당 1만2천원의 운임을 받고 시멘트를 날라다주고 있다.

<운송비용 30% 올라>
작년까지만 해도 t당 7천∼8천원이 고작이었다.
시멘트업체가 운송업체의 요구를 그대로 들어줄 수밖에 없었던 것은 화물증가율이 화물자동차증가율을 앞질러 운송업자가「상전」이 된지 오래인데다 길이 막혀 운송비용이 더 먹히는 현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시멘트 운송가격의 인상은 집값 상승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같은 현상은 시멘트업계뿐만 아니라 모든 산업분야에서 빚어지고 있으며 업계는 운송단가의 상승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삼성물산의 경우 정확한 데이타는 잡아 놓지 않고 있지만 지난해보다 운송단가가 30%가량 늘어난 것으로 보고 있다.
이 회사 물류 팀의 한 관계자는『운임을 요구대로 주지 않거나 운송조건이 조금만 까다로워도「못 싣겠으니 다른데 알아 보라」는 운송업체들이 부쩍 많아져 아예 수시로 화물차를 임대할 수 있는 별도의 중소운송회사를 잡아 놓고 있는 실정』이라고 푸념했다.
어찌보면 횡포에 가깝게 비춰지는 이같은 운임인상요구·화물적재거부에 대해 운송업자들도 할말이 많다.
비좁은 길에 화물은 늘고 차는 많아져 주요국도·고속도로가「주차장」이 돼가고 있는 마당에 어떻게 예전과 같은 운임으로 수지를 맞추겠느냐는 얘기다.

<인천항은 세계 최악>
경력 17년의 트레일러운전기사 이종익씨(57)는『2, 3년 전만 해도 서울∼인천간을 하루 두번까지 왕복했지만 요즘은 한번 오가기가 빠듯하다』며 갈수록 악화되는 도로사정을 설명했다.
경인고속도로를 이용하는 수입양곡 수송차량의 경우 지난86년 하루 2회 왕복 운행하던 것이 89년에는 1·5회, 지난해에는 l회로 회차율이 급격히 떨어졌다.
여기에다 올 들어 강화된 과적차량단속 또한 운송업자들의 볼멘 목소리를 높이게 하고 있다.
대한통운의 양승복이 사는『전국 각 도로에서 1∼2t만 중량이 초과해도 30만원의 벌과 금을 물거나 고속도로 진입을 금지 당한다』며『과적차량을 단속하는 것은 안전을 위해 당연한 일이지만 물자수송 난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악화되는 도로조건 때문에 트럭운전기사들의 이직률도 높아졌다.
이같은 물류 업계의「동맥경화증」은 곧바로 수출에 지장을 가져오고 가뜩이나 처진 국내수출품의 대외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있다.
국내 최대의 컨테이너 화물운송업체인(주)한진이 금년 초 분석한 서울∼부산간 컨테이너 운송현황에 따르면 한번 경부고속도로를 왕복하는데 평균 3l시간48분이 걸린다.「전국의 1일 생활권 화」는 이미 옛말이 된 것이다.
한번 왕복에 14∼l5시간 걸리던 80년대 중반에 비하면 최소한 경인지역의 수출업체들은 5년 사이에 수입원자재를 2배 이상 늦게 공급받고 수출품을 2배 이상 늦게 선적하는 셈이다. 이는 곧바로 수출채산성의 악화로 이어진다.
이 때문에 한진은 올들어 컨테이너 1백44개를 실을 수 있는 1천5백t급 컨테이너 전용선 2척을 건조해 부산∼인천간을 운행하는 등 멀쩡한 길을 놔두고 뱃길로 화물을 실어 나르는 「촌극」까지 벌이고 있다.
문제는 도로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국내 수출입 물동량의 95%이상을 처리하고 있는 부산·인천항은 2∼3년 전부터 「거대한 창고」「거대한 배대기소」로 전락해가고 있다.
특히 세계 최악의 적체현상을 빚고 있는 인천항은 외항상선들이 도착 즉시 부두에 화물을 내려놓기는커녕 평균 4∼5일씩 항구 안에 들어오지도 못하고 먼바다에 떠있는 형편이다.
항만청은 이에 따라 항만구역을 넓히는 유례없는 조치를 최근 취하기도 했다.
부산항도 세계6위의 무역항에 걸맞지 않게 시랜드·APL등 세계 유수 해운회사의 대형선박들이 이미 입항을 중단, 2류 항으로 전락했다.
해운항만청에 따르면 지난해 항만적체 때문에 생긴 직접비용과 간접적 기회비용 등을 모두 합하면 7천억 원에 달하는데 이는 올해 항만투자예산의 3배에 이르는 것이다.

<적체 향후 10년 지속>
이같은 도로·항만의 부족현상이 앞으로 국내산업의 대외경쟁력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할 것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자 청와대가 직접 나서 사회간접자본확충을 위한 특별기구까지 만들었지만 계획대로 사업이 추진되더라도 향후 10년간은 현재의 체증현상이 만족할만큼 해소되지 못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주)한진 김영석 화물운송부장은『지난7월 국내 육상운송시장을 부분적으로 미국해운업체들에 개방했는데도 이들이 선뜻 상륙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은 국내 도로·항만시설이 너무 낙후돼 있어 수익성이별로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나름대로 분석했다.
국내 운송업체의 경쟁력이 아니라 국내사회간접자본의 낙후성이 오히려 외국의 개방파고를 막아내는 웃지 못할 아이러니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을 궁극적인 해결방안은 도로를 늘리고 항만시설을 확충하는 길밖에 없지만 이는 당장에 이루어지기 힘든 만큼 우선 당장에 할 수 있는 것부터 해 나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해운산업연구원 정필수 박사는『우리나라 수출입컨테이너 화물의 90% 이상이 부산부두에서 직접 내륙으로 운송되지 않고 부두외곽의 야적장(CY)을 경유하는 바람에 운송이 지연될 뿐 아니라 부산시내 경유 등으로 운송비를 높이고 있다』며『내륙운송체계를 일원화할 수 있는 내륙컨테이너화물기지(ICD)조성이 시급하다』고 진단했다.
정 박사는 또『물 동량의 90%이상이 육로를 이용하고 그중90%가 도로 부문을 이용하는 바람에 도로 적체로 인한 비효율이 극심한 만큼 해상·철도 등을 통한 화물운송비율을 보다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홍승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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