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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제치고 괌이 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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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미국이 연례 대테러 훈련인 '톱 오프 4(Top-Off 4)'를 올해는 괌에서 최대 규모로 할 것이라고 19일 발표했다. 괌 주둔 미 해안경비대의 윌리엄 마후퍼 사령관은 "올해 훈련은 지난해의 '용감한 방패' 기동훈련보다 더 큰 규모로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AFP통신이 전했다. 지난해 훈련에는 세 척의 항공모함을 포함한 군함 30척과 항공기 280대, 2만2000명의 병력이 참가해 베트남전 이후 미군이 태평양에서 펼친 최대 규모 훈련으로 기록됐다.

괌이 태평양은 물론 동북아 주둔 미군의 중추 기지로 뜨고 있다. 괌은 앞으로 3년 안에 한국을 떠날 미군 9000명과 2014년까지 일본 오키나와에서 철수할 미 해병 8000명의 새 둥지가 된다. 미군의 재배치 전략에 따른 이런 변화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의 팽창을 저지하려는 의도도 깔고 있다. 미 시사주간지 뉴스위크 최신호(한국판은 21일 시판)도 괌이 펜타곤(미 국방부) 아태 전략의 핵심으로 부상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괌, 서태평양 미군의 전략 거점=괌 주둔 미 해군사령관인 찰스 라이딕 제독은 이 섬의 지리적 조건이 동아시아와 서태평양 지역을 아우르기에 이상적이라고 강조했다. 그에 따르면 괌을 중심으로 1500해리(약 1850㎞) 반경의 원을 그리면 그 안에 일본 오키나와는 물론 테러와의 전쟁이 벌어지는 인도네시아와 필리핀까지 들어온다. 1500해리는 항공기로 약 3시간, 군함으로 2~3일 거리다. 이 원의 끝에서 조금만 더 가면 일본과 한반도, 중국 해안 지역에 닿는다. 이 때문에 괌은 전 세계 원유 수송량의 절반이 통과하는 말라카 해협과 맞먹는 전략적 가치가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펠릭스 가마초 괌 주지사도 "봄에 실시될 올해 톱 오프 4 훈련은 괌의 전략적 가치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고 설명했다. 괌에는 현재 공군과 해군을 중심으로 2800여 명의 미군이 주둔 중이지만 미 국방부의 전 세계 미군 재배치 계획에 따라 조만간 8000명 이상으로 늘어나며, 10년 안에 2만 여명이 배치돼 오키나와를 능가할 전망이다.

2001년 9.11 테러를 계기로 전력 배치 상황을 재검토한 펜타곤은 도널드 럼즈펠드 전 국방장관의 주도 아래 '물에 뜬 수련잎 전략'을 내놨다. 테러 공격 같은 불시 도발에 신속하게 대응하려면 독일과 한국에 대규모 병력을 배치하는 대신 전 세계에 연못의 수련잎처럼 거점을 확보하고 서로 연결해 미군의 글로벌 이동을 쉽게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괌은 서태평양과 동아시아의 '수련잎'으로 선택됐다. 미 본토에선 멀고 분쟁 가능 지역과는 가까운 데다 미국 영토이기 때문에 외교 절차나 지역 주민과의 별도 협상 없이도 마음대로 전력을 배치하거나 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괌 전력 증강은 중국 견제용"=뉴스위크는 펜타곤이 괌의 전력을 증강하려는 것은 단순히 테러와의 전쟁이나 지역 안보만 고려한 게 아니며, 훨씬 더 큰 전략적 목표를 겨냥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하와이에서 활동하는 방위 분석가 리처드 핼로런은 "미국은 중국의 세력 확장을 견제할 목적으로 괌의 전력을 증강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 공군이 괌의 앤더슨 기지를 최신예 F-22 랩터를 포함한 48대의 전투기와 급유기를 배치할 수 있도록 수리하고 있는 것도 중국을 겨냥한 것으로 관측된다. 전투 행동반경이 1200㎞에 이르는 F-22와 이를 곱절 이상 늘릴 수 있는 급유기를 함께 배치하는 것은 단순히 대테러 활동만을 위한 게 아니라는 분석이다.

여기에 최신 무인 정찰기 글로벌 호크 10대를 수용할 수 있도록 5280만 달러를 들여 기지 개조 공사를 최근 시작했다. 글로벌 호크는 한국에 배치된 U-2 고공 정찰기를 대체할 예정이다. 괌이 서태평양과 동아시아 지역에서 미국의 '눈'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전망되는 이유다. 뉴스위크에 따르면 이 같은 전력 규모는 가벼운 분쟁이나 필리핀의 알카에다 관련 게릴라, 북한과의 마찰에 동원할 수준을 훌쩍 넘는다. 중국과 마찰이 벌어질 경우 동아시아의 제공권을 장악하려는 미 국방부의 의지가 읽히는 대목이라는 것이다.

미 해군도 항공모함이 기항할 수 있도록 괌의 아프라 하버 기지를 확장하고 있다. 순항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는 6000t급 로스앤젤레스급 공격용 핵잠수함 두 척을 괌에 배치했으며, 올 하반기에 한 척을 추가할 방침이다. 장기적으로는 차세대 스텔스 전투함과 잠수정을 장착하고 은밀한 특수작전에 이용할 수 있는 핵잠수함도 배치될 것으로 보인다. 미 해군 특수부대인 네이비실은 이미 괌에서 활동하고 있다.

채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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