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천에도 지하 핵공장”/귀순한 북한외교관 고영환씨 일문일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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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93년쯤 김 부자 권력승계 가능성/김정일에 해외 특산물 정기상납/“사회주의 문제있다” 말하다 낙인/봉급이 적어 보따리 장사로 충당
귀순 5개월만에 기자회견을 가진 전 콩고주재 북한 대사관 1등서기관 고영환씨(38)는 검정색 양복차림에 콧수염을 조금 기른 모습으로 약간의 북한 사투리가 섞였으나 시종 여유있고 유창한 말솜씨로 기자들의 질문에 비교적 상세하게 대답했다. 다음은 1문1답 내용.
­귀순 동기는.
▲3월초 대사관 근무실에서 TV를 보다 알바니아의 반사회주의 시위가 보도되는 것을 보고 사회주의의 앞날이 걱정된다고 혼잣말로 얘기한 것을 대사관에 파견중이던 정치보위부 지도원이 들어 반체제인사로 당에 보고돼 신변에 위협을 느꼈다. 또 외교관생활을 하면서 외국잡지 등을 통해 남한 경제의 발전과 사회의 민주성 등을 보고 북한체제의 폐쇄성에 염증을 느껴왔다.
­북한의 핵개발 가능성은.
▲김일성은 80년대말 남한측의 경제개발과 군사력급성장으로 체제보위에 위험성을 느껴 곧바로 당에 핵무기개발을 지시한 것으로 외교부 수뇌를 통해 들었다. 이 지시로 영변과 박천에 핵처리 시설과 지하 핵건설공장을 각각 건설,소련의 도움으로 핵개발을 추진하고 있다고 들었다.
외교부내에서는 2∼3년안에 핵무기생산이 가능할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북한의 권력승계 시기는.
▲7차 당대회가 열리는 93년쯤 구체적인 권력승계가 논의될 것 같다. 그 다음해가 김일성 주석의 80회 생일이므로 이때 어떻게든 가닥이 잡힐 것이다.
­KAL기 사건에 대해 들어 본적이 있는가.
▲87년 11월 사건당시 나는 김영남 외교부장과 서울올림픽 저지를 위해 동구권을 돌며 사회주의국가들의 동조를 구하던 중 앙골라에서 국가보위부의 한 간부로부터 KAL기사건을 귀띔 받았다.
김현희를 직접 만나거나 김의 범행사실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지는 못하지만 당시 외교부에는 뭔가 큰 일을 저질렀다는 분위기가 팽배해 직원들의 대부분이 사건을 눈치챘었다.
­김정일의 인간성은.
▲불어권 국가원수들이 평양을 방문할때 통역차 김정일을 네차례 만났다. 김정일의 측근들로부터 들은 얘기로는 김정일이 소련등 동구권국가에서 미인들을 1명당 3만∼5만달러씩 주고 초청,잔치를 벌이는등 방탕·사치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김정일은 또 외교부나 당내 업무를 점검할때면 새벽 1∼4시 사이에 전화를 걸어 확인하기 때문에 귀가하지 못한 경우가 태반이다.
­북한외교의 기본 방향은.
▲초지일관 남북통일을 위한 지지호소에 주력하고 있다.
이 때문에 해외외교가에서는 경제외교가 가장 우선되어야 한다는 현실성을 모르는 폐쇄적인 외교정책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북한의 외교관 생활은.
▲대사는 월 4백50달러,서기관 3백50달러,그이하 직원은 1백50∼2백달러를 받는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다. 이 때문에 해외주재 외교관은 현지 국민들을 상대로 밀수를 하거나 보따리 장사를 해 비용을 충당하는 경우가 많다.
지난해 대사관운영비가 부족해 중국 대사로부터 2만달러를 빌린적이 있으나 갚지 못하고 귀순했다.
­외교관들이 김정일 등을 위해 하는 일은.
▲노르웨이의 경우 바닷가재,앙골라에서는 푸른상어 간등 특산물을 「정성품」으로 준비해 정기적으로 상납해왔다.
­북한의 유엔가입결정 배경은.
▲올 2월까지만 해도 내년께 가입할 예정이었으나 국제관계의 변화로 방침이 수정됐다.
그러나 「조선은 하나다」라는 노선은 계속 고집할 것이다.
­가족관계는.
▲홀어머니(68)와 아내(35)·두 딸이 있다. 또 만경대 지대함미사일 설계기사인 큰형(47)등 형2명과 누나·누이 등이 있다.
­남한에서의 생활에 대한 소감은.
▲용인자연농원에 부모의 손을 잡고 놀러온 아이들의 밝은 표정을 보고 부러웠다. 그러나 음식점이나 백화점 등에서 볼 수 있는 과소비풍조는 선진국답지 않은 후진국 의식구조로 본다.<최형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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