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대통령 "국정 파행이 파탄으론 안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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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저녁 청와대 관저에서 SBS와 한 시간 반 동안 특별대담을 가진 노무현 대통령은 기존의 TV토론과는 달리 시종 차분한 어조로 각종 현안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피력했다.

낙관적인 전망도 많았다. 盧대통령은 특검법 거부로 촉발된 가파른 정국대치에 대해서도 "국정이 '파행'으로 가고는 있지만 '파탄'으로 가고 있진 않다"는 시각을 드러냈다. 오히려 盧대통령은 "지켜야 할 가치는 지켜야 한다"고도 했다.

대선자금 검찰수사에 대해서도 "국민이 피곤하고 지쳐 있는 것 같지만 이번 수사가 잘되면 획기적으로 변화할 것"이라며 "길게보면 대선자금도 선거를 할 때마다 10분의 1로 줄어드는 등 많은 발전이 있어왔다"고 했다.

盧대통령은 "지난 9개월간 매우 어려운 시기였다"며 "그러나 편안하게 가다 뒤에 어려운 일을 당해 우왕좌왕하는 것보다는 자신을 단련할 기회가 된 것 같아 행운이라고도 생각한다"고 최근의 심경을 토로했다.

*** 이라크 파병, 명분보다 현실

-이라크 파병에 어떤 고려를 하고 있나.

"명분에 논란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역사적 평가보다 중요한 것은 오늘의 현실을 어떻게 헤쳐나가느냐 하는 것이다. 국익을 얘기하는데 이라크 파병해서 돈 벌고 석유를 확보하는 등의 문제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북핵문제의 해결을 위해 미국과 어떤 관계를 가질 것인가 하는 전제 위에서 파병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특검법 거부로 가장 어려운 시기를 맞고 있다. 대통령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고,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파행, 파행 하지만 정부는 할 일을 또박또박 하고 있다. (검찰수사를 받고 특검을 그 뒤에 하는)두번의 고통스러운 수사를 받느니 개인적으론 특검을 받아버리고 싶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원칙적으로 검찰의 수사권을 무력화할 수 없다. 그래서 검찰 수사 끝나면 내가 요청할테니 원칙을 지켜 가자는 거다."

*** 崔대표와 토론, 피투성이 될것

-단식 중인 최병렬 대표가 텔레비전 토론을 제안했는데.

"지금은 누가 보더라도 두 사람이 만나면 싸우지 않겠나. 대통령과 야당 당수가 TV에 나와 서로 옳으니 그르니 싸우게 되고 지난날의 허물들 얘기해 결국 두 사람이 피투성이 싸움을 하는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줘야 하겠나. 건설적 토론이 안될 듯하다."

-그렇다면 정국을 풀어갈 대통령의 해법은 뭔가.

"해법은 시간과 상황이 만들어낸다. 대통령에게 책임이 많으면 국민과 언론이 대통령을 어렵게 만든다. 한나라당의 책임이 많으면 그쪽이 또 어렵게 되겠죠. 대통령의 행위로부터 비롯됐다고 자꾸 주장하지만 실제로 다수당이 국회를 세웠으므로 스스로 푸는 것이 맞다."

-검찰이 대선자금 수사해 다 파헤치면 경제가 어렵다는 주장부터 기업 투명성을 높이는 기회라는 주장이 나온다.

"제 의견을 얘기한다면 지금처럼 수사해야 한다. 경제에 어떤 영향 끼칠까에 대해 저도 여러 사례 알아봤는데, 그간 한국에서 정치 대결 상황이 심했을 때 경제가 위축된 일이 없었다. 이탈리아 마니폴리테 때도 경제와는 인과관계가 없었다더라. 4년간 온나라 뒤집어질 만큼 수사했는데도 이탈리아 경제가 나빠진 것이 없고 투명성과 합리성이 좋아졌다는 의견이 많다. 어렵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나. 저도 대강 하고 넘어갔으면 싶을 만큼 어렵다."

*** 대선자금 옛날엔 수조원

-깨끗한 선거풍토를 만드는 복안이 있나.

"옛날에 당선된 분들을 보면 노태우 대통령 때는 수조원 썼다고 보통 얘기한다. 김영삼 대통령 때는 조 단위가 아니고 수천억원 정도라고 한다. 김대중 대통령 땐 천억대라는 얘기였다. 지난 대선 땐 한나라 진영도 수백억 넘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 진영도 밝히겠지만 합법적인 것 빼고 나면 수십억 규모만 남게 된다. 많이 달라져 왔다. 다음 대선 때는 합법적 규모를 더 열어주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김현철 수사라든지 여러가지 수사 했던 것이 크게 효과가 나고 있다. 대통령과 검찰 관계도 박정희 대통령 시절과는 하늘과 땅 차이고, 김대중 대통령 시절보다 조금 더 달라져 있다."

-불신임 된다면.

"그건 헌법에 규정돼 있다. 60일 이내 다음 대통령을 뽑게 돼 있어 엄청 혼란이 올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정도 절차를 거친다고 나라가 흔들리지 않는다."

-열린우리당에 입당할 계획이 있나.

"이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고 어느 것이 대통령직을 수행하는 데 편리하냐는 전략의 문제다. 전략적으로 판단해 결정하려고 한다. 지금 열린우리당은 의석수라든지 여러가지 사정으로 봐서 입당이 반드시 도움이 안될 수 있다."

-최근 언론관에 변화가 있는 것으로도 보이는데.

"지금 언론과의 관계가 점점 좋아지는 것은 사실이다. 처음에는 아주 힘들었다. 갈등이 심했고 보는 사람도 불안했고. 지금은 나와 언론, 정부와 언론 관계가 상당히 많이 안정되어간다."

*** 386 등 통해 民心 알아봐

-386만 끌어안는다는 지적에 대해선.

"지금은 측근식 운영이 없다. 측근들과는 독대를 안한다. 한사람 얘기를 듣고 결정하고 나중에 다른 얘기 들으면 낭패다. 다만 제가 제일 신뢰하니까 민심이 답답할 때 전화해 가지고 '요새 이렇다는데 이거 한번 알아보게', 이렇게 말한다."

-민주당 조순형 대표가 당선됐는데 어떻게 보나.

"축하드린다. 민주당 선거과정을 보니 좋아졌는데 그것은 분당 덕분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분한테 하나 섭섭한 것은 내가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 민주당을 해체하겠다고 공약했다. 그 공약을 종용한 분들이 조순형 대표, 추미애 의원 등이다. 민주당의 해체가 정치구도 개혁의 과제였으나 당정분리 원칙 때문에 제 손으로 개혁 못하고 당에 버려뒀더니 분당이 됐다. 그런데도 저에게 배신이라고 한 것은 사실과 다르다."

-盧대통령의 적극 지지자 중 이반현상이 있는데.

"고민이 많다. 하지만 나로선 어쩔 수 없다. 대통령이 되기 전에 생각한 것과 현실적 조건에서 하는 일이 항상 일치할 수만은 없다는 점이 있다. 이해를 구하려고 한다."

-부안사태의 해결방안은.

"공청회 또는 의견수렴 과정에 들어가기 전에 이렇게 사태가 터져버려 대화가 막혀버렸다. 부안에서 이 일을 성사시키느냐 마느냐 하는 결론 이전에 그야말로 할거냐 말거냐 결정하는 민주적인 프로세스를 거치자는 것이다. 그것이 중요하다. 그것도 하지 못하고 물러나오면 정부가 신뢰성이 없고 앞으로 정부가 하는 일이 다 일어서서 데모하면 다 좌절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도 있다."

-강력한 부동산 대책에도 불구하고 강남불패론이 여전한데.

"강남불패로 가는데, 그 문제에 관한 한 대통령도 불패로 간다. 제일 중요한 것은 모든 거래로 인한 소득을 완벽히 투명하게 관리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강민석.강갑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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