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김구지음 『백범일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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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백범일지』는 한 독립운동가가 조국의 광복을 위해 자신의 일신을 던지려는 각오로 마지막 남기고자 한 역정의 기록이면서 독립의 방책으로서의 길을 제시하고자한 기록이다. 그래서 백범은이 기록을 유서로, 또 독립운동에 대한 은감으로 남긴것이다.
한 인간이 자신의 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민족적 공동·체로서의 국가를 가질 때 살아가는 방식과, 이민족의 지배하에서 살아가는 방식은 전혀 다를 것이다.
이민족의 지배하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자신의 사적인 삶은 그의 현실적 조건여하와 상관없이 행복에의 전망을 상실하고 만다. 행복에의 전망이 상실된 이유는 그의 삶의 터전인 공동체가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기에 개인의 사적인 삶은 공동체적인 삶으로 바뀌거나 공동체적삶으로 수립되고 만다. 김구가 살아나가는 길이 그것을 보여준다.
김구는 어린시절 양반에 대한 굴욕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글을 익혀 진사가 되고자 한다. 그러나 과거시험장에서 공동체를 관리하는 관료가 타락한 것을 보고 그것을 포기하고 새로운 길을 찾는다. 관상공부, 지관공부, 동학접주등을 거친다. 그 과정을 거치면서 그의 배움이 커지고 자신의 사적인 삶은 공동체적 삶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깨닫는다. 나는 나로서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민족이라는 집단 속에서 살아가야 함을 알게 된다.
이러한 인식이 그가 장성해 갈수록 깊어져 사적 자아와 민족적 자아는 유기적 관계에 있음을 피부로 느낀다.
자신의 행복이나 가족의 전망은 보다, 더 큰 유기체인 국가가 살아 있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에 대한 인식이다.
이때부터 그는 민족적 자아로 산다. 뿐만 아니라 그의 가족이며 이웃이며 모든 대한 사람들이 사적 자아가 불투명한 상태에서 민족적자아로 살아가는 거대한 생명체가 된다. 개인적인 불행은 그보다 큰 생명체인 민족을 살리기 위한 투쟁이라는 행복을 찾아나선다.
『백범일지』가 후손인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문지기의식」과 「주민의 고토, 회복의식」으로서다.
그의 문지기의식은 장성하여 민족적 자아로 살아간 이후 그의 생의 중요한 목표로 설정된다. 순사시험에 응시하고자 한것이며, 임시정부에서 청사의 수위를 지망한것, 그리고 해방된 조국에서그가 「나의 조국」이란 논설을 통해 「독립된 나라의 문지기」가 되기를 소원한 일등에서 보듯 거대한 생명체를 지키겠다는 그의 의지는 자신의 인생목표이기도 했다.
이러한 의식은 『백범일지』를 이루고 있는 근간이 되어 그를 이끌어가는 힘이 되기도 한다.
자신의 출신성분이 「상놈」이라고 강조하는 것에서 그의 문지기 의식은 비롯되는데 그것은 그가 자신의 출신성분을 솔직하게 표현한 것이라기보다 거대한 생명체인 국가가 상실된 이후의 삶이란 미천할 수밖에 없다는 인식에서 비롯한다. 미천한 자이기 때문에 배움에 힘쓰고 그 배움을 통해서 국가를 복원할 계책을 생각하고 무슨 일이나 할 수 있는 행동성을 갖는다.
공동체를 갖지 못한 자는 떠돌이다. 편안하게 안주할 집이 없고 가족이 모여 가사를 도모할 집도 없다. 이 떠돌이로서의 삶을 그 자신의 삶으로 보여준다. 부모를 모시고 양반가의 행랑방에서기거하거나, 감옥의 주변에서 온 가족이 진을 치고 있다거나, 아내나 아이나 어머니를 이국 땅에 묻고 유랑생활을 하는 그의 인생역정은 그가 유랑인임을 증거해준다.
그러나 그는 자신 뿐만이 아니라 대한인이 모두 그러한 유민임을 도처에서 목격한다. 중국이나 만주 주변에서 유민으로 살아가는 대한인들이 생명을 유지하기위해 일본인의 주구가 되어있거나 천민이 되어 서로 헐뜯고 살아가는 것을 목격한다. 우두머리는 많고 쉽게 분열되며 남의 꾐에 잘 넘어가는 이들이 대한인들이다.
그는 그 유민에게 고토회복의식을 심어주고자 노력한다. 유민은 정착지를 찾아 떠나거나 자신들의 고토를 회복하여 행복했던 시절로 돌아가고자 한다. 그가 이끈 임시정부라고 하는 것이 바로 유민의식에서 비롯된 고토회복운동의 중심체다.
붕괴위기에 있었던 임시정부를 이끌고 상해·중정 등지로 옮겨다닌다거나 이봉창·문봉길 의사로 하여금 의거를 감행하게 했던 것이나 해외동포들에게 경제적 지원을 호소하면서 광복군을 조직하고 독립당을 만들어 독립을 위한 준비를 했던 것도 모두이와 같은 유민의 고토회복의식에 기인한다.
그는 순수민족주의자이며 혈통주의자이기도 하다. 사상의 조국이나 주의의 조국을 원치 않으며 해방된 조국에 와서도 완전한 독립을 주장한다. 분단된 조국을 보고 완전한 독립이 되지 않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적어도 그의 민족주의사상은 약소민족에게는 영원한 진리일 것이다. 우리는 민족주의 없이 살아갈 수 없다. 그는 우리에게 그러한 진리를 가르쳐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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