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은 지금 몇시인가(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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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한 연구원이 실시한 의식조사에서 대다수의 일선 수사경찰관들은 수사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고문등 어떠한 수단을 동원해도 괜찮으며 심지어 헌법상의 기본권인 형사피의자에 대한 무죄추정권마저 부정하는 입장을 보였다. 그러면서 경우에 따라 청탁은 들어줄 수 있고 수사사례비도 받을 수 있다고 응답하고 있다. 일선 경찰수사관들을 지배하고 있는 반민주적·반인권적 의식과 부패심리의 일단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는 우리들이 짐작해왔던 사실이고,또 더러는 수사경찰관들과의 개별적인 접촉에서 직접 경험하기도 해본 것이기도 하지만 막상 그것을 통계를 통해 확인하니 새삼 놀라움과 개탄을 금할 수 없다. 경찰의 민주화수준은 아직도 이 정도란 말인가.
경찰은 지난 1일 경찰청으로 새로운 출범을 했다. 경찰청 출범의 참 뜻은 고위직의 자리가 늘어나고,그 권력이 확장되는데 있는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그것은 법의 공정한 집행을 통해 국민의 권리를 더욱 확고히 보장해 주는것 이상도,이하일 수도 없다.
그러나 겉이 아무리 번드레해졌다고 해도 그 속알맹이인 경찰관들의 의식세계는 이렇듯 반민주적·반인권적 차원에 머물고 있다면 경찰청도 속빈 강정일뿐이다. 아니 경찰청 발족으로 더커지고 강대해진 조직은 오히려 전보다 더 한 억압의 수단이 될 수 있다.
스스로는 그런 억압적 의식과 부패의식에 젖어 있으면서도 63%가 검찰의 수사지휘에 불만을 토로했고 51%는 아예 검사에 대한 지휘품신이 불필요하다고 답했다. 우리도 장기적으로 경찰의 검찰로부터의 독립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이지만 우선 경찰에 이렇게 묻고싶다. 현재와 같은 반민주적·반인권적 의식과 부패심리속에서 과연 그같은 의견이나 주장을 내세울 자격이 있는 것인가. 스스로는 전혀 자격을 갖추고 있지 못하면서 권한만 확대하려 하는건 전형적인 집단이기주의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민주주의는 절차의 윤리,과정의 정의에 다름아니다. 결과만 옳으면 수단과 방법은 어떠해도 좋다는 생각이야말로 반민주적이고 독재적인 사고방식이다.
경찰이 진실로 민주화의 의지가 있다면 이번 조사결과를 심각히 받아들여야 한다. 조사결과가 정확치 않다느니,많은 정직한 경찰관들이 있는데 도매금으로 매도하는 것은 옳지 않다느니 하는 식의 변명과 항변의 구실이나 찾으려 해서는 결코 발전이 이루어질 수 없다. 어떤 조사든 얼마간의 오차는 있게 마련이며 고개가 숙여지는 경찰관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것을 모르진 않는다.
그러나 흔들릴 수 없는 것은 역시 경찰안에 반민주적 의식과 부패심리가 지배적이라는 사실일 것이다. 따라서 경찰로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이런 조사내용을 뼈아픈 반성의 자료로 삼아 의식전환 교육에 나서야 할 것이다.
경찰은 비단 그 스스로뿐 아니라 현정권의 민주화 정도를 가늠케 하는 잣대가 된다. 그런 점에서 정권차원에서의 관심과 대책마련도 필요하다고 본다.
아무리 목적이 옳더라도 수단과 방법이 그릇되면 그것은 가장 반민주적·반인권적인 것이라는 의식을 뿌리깊게 심어줄 방안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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