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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닌·스탈린은 정통마르크시즘과 구별비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5면

소련의 혁명적 변화는 금세기 양대진영의 한폭인 공산주의 모국의 붕괴라는 점에서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종말로 비춰지고 있다.
소련사회의 이론적 기초였던 마르크스-레닌주의는 분명 70여 년에 걸친 거대한 현실검증과정에서 「부적합」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과연 마르크시즘 자체가 이론적·현실비판적 효용성을 상실했느냐는 문제에 대해서는 이론이 많다. 그러나 고르바초프가 페레스트로이카를 부르짖고 소련사회의 개혁을 시작했을때 이미 스탈린주의는 철저히 부정되었다. 이어 소련과 동구에 거대한 변화가 왔다. 소련의 변화를 맞으면서 사회주의의 앞날은 어떻게 될 것인지, 새로운 마르크시즘은 과연 동구나 소련의 또 다른 이데올로기가 될 것인지를 국내외학자들의 의견과 이론 등을 통해 알아본다.
소련의 오늘을 보며 자본주의의 명백한 승리를 주장하는 보수학계와 달리 진보적 학계에서는 소련·동구사회가 지향하는 현실적 모델이 서유럽국가라는 점에서 넓은 의미의 사회민주주의는 계속 존립할 수 있다는 전망도한다. 레닌과 스탈린으로 이어지는 정통마르크시즘에 대한 비판으로 제기된 서구 마르크스 이론도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국내 진보적 학계의 이 같은 관심변화를 상징하는 사건은 70년대 『전환시대의 논리』라는 베스트셀러로 국내에 사회주의국가를 본격 소개한 주인공 이영희교수(한양대)「환멸」발언이다. 이교수는 연초 한국정치연구회 월례발표회에서 『소련·동구의 변모를 관찰하면서 적잖은 배신감을 느꼈다. 정직하게 말해 환멸을 느낀다』고 고백했다.
최근 정통 마르크스-레닌주의의 명백한 현실부적합성 판정에 따른 새로운 이론모색의 움직임은 월간『사회평론』으로 대표된다. 진보적 지식인이 공동출자해 창간, 운영하고 있는 『사회평론』은 창간호에서 「한국에서 사회민주주의는 대안일수 있는가」라는 특집기획을 마련했다. 정통 마르크스-레닌주의를 포기한 소련·동구사회가 지향하는 서유럽 복지국가의 이론적 기초인 사회민주주의를 가장 먼저 「대안의 하나」로 검토하고자 한 것이다.
국내 진보적 학계에서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마르크시즘의 패배는 소련사회라는 현실세계의 실험에서 증명된 레닌-스탈린주의다. 즉 프롤레타리아 민주독재를 빙자한 일부 당관료의 독재나, 부의 재분배 대신 빈곤의 재분배를 초래한 사회주의 계획경제다.
소련의 이 같은 실패는 대부분 레닌과 스탈린의 책임으로 돌려진다. 마르크스에게 l차적 책임이 지워지지 않는 것은 마르크시즘이 곧 레닌-스탈린주의만은 아니라는 배려 때문이다.
소련정치전문가 김학준박사(청와모정책 조사보좌관)는 일찍부터 레닌의 혁명전략에서 소수독재의 뿌리는 찾았다. 마르크스의 다소 인본주의적인 「프롤레타리아독재론」과 달리 레닌의 혁명은 당초부터 「소수의 권력장악」을 겨냥했다는 것이다. 즉 직업적인 소수 혁명전문가들이 비밀결사식 조직을 결성해 혁명을 이끌어가는 전위가 되어야 한다는 조직 이론이다.
이 같은 레닌의 조직(볼셰비키)에 의해 혁명이 완결된 결과 조직원인 소수 당원에로 권력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전체주의적 질서를 확립한 스탈린은 더욱 비판받는 것이 당연하다. 신 경제정책을 도입해 실질적 생활수준향상을 꾀했던 레닌과 달리 스탈린은 『자본주의에 포위된 공산주의(소련)를 지키기위해 중공업부문이 필요하다』며 농업부문과 소비재 경공업부문을 희생시킨다.
그러나 최근 외국학자들의 레닌비판이 소개되면서 스탈린에 대한 비판은 결국 레닌에게로 이어지고 있다. 소련의 경제학자 세류닌은『강제노동과 혁명반역자에 대한 테러를 도입한 것은 1차 대전 당시 「전시공산주의」를 이끈 레닌이다. 스탈린은 레닌의 방안을 본격적으로 확산시켰을 뿐』이라고 비판한다.
역사가인 포포프 역시『스탈린이 이상적 전체주의국가를 건설할 수 있도록 한 것은 레닌시대에 이미 제시된 권력의 무한한 집중때문』이라고 비판한다.
이에 따라 소련을 사회주의 모국으로 보아온 국내학자의 눈길은 자연히 성공적 발전을 이룬 서유럽국가의 사회민주주의로 쏠리고 있다.
정치경제학자인 김수항교수(서울대·경제학)는 계간『사회와 사상』좌담에서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인정한다는 의미에서 사회주의 시민사회는 더할 나위없이 훌륭한 개념이다.그러나 개인의 권리와 자유를 인정하더라도 사회적 노동과 소유라는 기본적 원칙에 합의해야 한다』며 사회주의적 민주주의개념을 주장한다.
박성교수(서강대·정치학)와 이성형박사(동국대강사)는 각각 사회민주주의에 대한 단행본을 편역해 그 역사, 특징 등을 소개하고 있다.
사회민주주의는 대표적 이론가인 베른슈타인이 엥겔스사후인 1896년 『사회주의의제문제』라는 논문을 발표하기 전까지 마르크스주의와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전까지 독일사회민주당은 마르크스주의적 사회민주주의의 모델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베른슈타인의 수정주의로 사회민주주의는 마르크시즘과 구분되며, 특히 1905년 러시아혁명의 성공이후 레닌 중심의 마르크시즘과 명백히 구분되는 국제노동운동의 보수세력으로 자리 잡는다. 레닌은 사회민주주의를 비판하며 자신들을 이와 구분되는 「공산주의자」로 불러줄 것을 요구한다.
이박사는 『현대 사회민주주의는 시대와 지역에 따라 너무나 다양해 이데올로기적 기준만으로 판단하기 힘들다』며 세 가지 공통점을 지적한다. 첫째는 실용주의적 기준이 이데올로기적 기준보다 우위에 있다는 점. 경제성장과 복지를 위해 서구제도의 도입을 서슴지 않는다. 둘째는 의회민주주의노선, 혁명이 아니라 대의체와 복수정당제 등 자유주의적 정치민주주의 제도를 고수한다. 셋째는 케인즈주의와 복지정책. 국가가 개입해 지속적 성장과 완전고용·복지 등을 최우선 과제로 수행한다.
결국 사회민주주의는 자본가와 노동자의 극한적 대립과 혁명이라는 방법대신 두 계급간의 타협과 점진적 개혁을 택한 셈이다.
이밖에 보다 이론적 차원에서 19세기 마르크스이론을 현대사회에 맞춰 해석하려는 헤겔주의적 마르크시즘, 구조주의적 마르크시즘, 분석적 마르크시즘 등 지금까지 홀대 받아온 서유럽의 마르크스적 이론이 급속히 소개되고 있는 것도 정통을 주장해 온 소련식 마르크시즘에 대한 실망과 새로운 대안모색의 움직임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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