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 잔류파도 대통령과 거리두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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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정치권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위상이 말이 아니다. 야당이나 열린우리당 탈당파는 말할 것도 없고, 열린우리당에서도 천대받는 형국이다. 잔류파 의원들도 노 대통령 얘기가 나오면 손사래를 친다. 12일엔 열린우리당 김태홍 의원이 탈당했다. 31번째다. 김 의원은 "당과 정부가 정책과 정치 모두에서 실패했다. 노무현을 선택한 사람으로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14일 전당대회에서 당의장에 선출될 예정인 정세균 의원은 이날 라디오 프로그램에 나와 "(대통합신당은) 대통령으로부터 자유로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이 당에서 요구하면 언제든 탈당하겠다고 했기 때문에 더 이상 논란은 필요없다"고 했다.

어느 시점이 되면 우월적인 입장에서 당이 대통령에게 탈당을 요구하겠다는 소리로 들린다. 장영달 새 원내대표는 이미 적당한 대통령의 탈당 시점으로 3, 4월을 예시해 놓고 있다. 이런 모습들은 국민 정서에서 비롯된 것이다.

반노(反盧)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비노(非盧)는 돼야 어떻게 움직여 볼 수 있다는 절박감 때문이다.

친노파로 분류되는 참정연 소속의 의원도 "대통령이 정치에 개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역대 대통령들처럼 적당한 때 알아서 탈당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여론조사 전문가는 12일 "열린우리당 안에서 3월 중순까지 대통령이 탈당하면 의원들이 탈당하지 않고, 대통령이 탈당 안 하면 의원들이 탈당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파다하다"며 "역설적으로 노 대통령이 여권발 정계개편의 상수(常數)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여권 각 정파들의 '노 대통령과의 거리두기'는 상당 기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날 원내교섭단체로 등록한 김한길.강봉균 의원 등 탈당파가 만든 '중도개혁 통합신당 추진모임'의 핵심 관계자는 "노 대통령은 이미 국민에게 탄핵당했다는 게 우리들의 공통된 생각"이라고 밝혀 앞으로도 '반노' 노선을 일관되게 지켜나갈 것임을 분명히 했다. 천정배 의원 등 탈당파가 주도하는 '민생정치모임'도 노 대통령에 대해선 같은 입장이다. 여당 내 대선후보인 정동영 전 의장도 연일 노 대통령에 비판적 발언을 쏟아내며 대통령의 정치불간섭을 요구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친노파와 나머지 계파 간의 간극은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 이에 대해 친노파의 이화영 의원은 "언제까지 내부 싸움만 하고 있을 건가. 오로지 인기 없는 대통령과의 차별화로 정치적 성과를 얻어내겠다는 생각은 대단한 착각"이라고 비판했다.

김정욱.이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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