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옐친시대」 다가온다/「3일 쿠데타」후의 권력판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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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맨몸으로 민주지켜 「세계적 영웅」 부각/정변 후유증 고르비 입지는 점차 쇠퇴
【동경=방인철특파원】 「3일천하」의 쿠데타를 경험한 소련국민은 이제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과 옐친 러시아공화국 대통령중 누가 진정한 그들의 지도자냐는 어려운 물음에 직면해 있다.
탱크위에 서서 러시아인의 자유와 민주를 몸으로 지키며 자신의 사망기사는 쓰지 말아달라고 주문한 옐친의 배짱과 지도력은 그를 「세계적 영웅」으로 찬사를 받기에 족할 만큼 끌어 올렸다.
반면 22일 저녁 기자회견장에서 나타난 고르바초프는 연금의 충격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초췌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쿠데타의 주모자들을 평소 신뢰해온 것은 일생일대의 잘못이라고 목소리를 흐렸다.
지난 3일간의 쿠데타극으로 가장 많이 잃은 것은 고르바초프 자신으로 당분간은 그의 권좌를 지킬지 몰라도 멀지 않은 장래에 대통령직을 내놓아야 할 것이라는 의견이 일본내 소련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지배적이다.
그 이유로 지적되는 것은 대체로 고르바초프 인사의 실패,쿠데타 전후과정에서의 선명치 못한 행동,그리고 상대적으로 옐친의 과감한 행동성이 더욱 두드러진다는 점을 꼽고 있다.
일본 외무성은 22일 재빨리 내부자료를 통해 앞으로 대소교섭에 있어 고르바초프 보다 옐친에 더욱 역점을 둘 것을 시사하는 한편 모든 경로를 동원,옐친과의 접촉창구를 넓히라는 지시를 내린 것으로 알려져 주목을 끈다.
이 내부자료에 따르면 쿠데타 실패에 따라 당분간 소련의 권력은 고르바초프에게 남아 있을 공산이 크지만 그에 대한 소련 국내의 비판이 여전히 거세어 예측을 불허하는 유동적 상황이 계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에 반해 쿠데타 좌절에 크게 기여한 옐친 대통령에 대해서는 국민적 평가가 한단계 높아져 고르바초프 통치 및 정책에 대한 옐친의 발언권이 더욱 높아질 것으로 분석했다.
고르바초프는 이날 회견에서 『옐친 대통령과 의견의 일치를 이루고 있다』면서 『앞으로 소연방과 러시아공화국이 협조의 정신으로 협력해 나가겠다』고 밝혀 인사와 행정에서 러시아공화국,더 넓게는 개혁파의 뜻을 대폭 수용할 뜻을 비쳤다.
크림별장에서 유폐된 고르바초프는 보수파로부터의 끈질긴 사임압력을 단호히 거부했다고 밝혔지만 왜 이 중요한 시기에 휴가를 갔느냐는 질책성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심지어 그가 혹시 사태전후 쿠데타주도 세력과의 이면제휴는 없었는지 의혹까지 사고 있다.
기무라(목촌범) 일본 문화센터 교수는 고르바초프가 앞으로 정치력을 완전 회복하기는 어려울거란 의견에 동의한다.
고르바초프가 강제적으로 연금됐다 하지만 대통령직 승계를 발표한 야냐예프 부통령등 쿠데타 주동자가 모두 자신의 손으로 임명한 사람들인데다 러시아공화국측이 이번 쿠데타의 실질적 지도자라고 몰아 붙이고 있는 루키야노프 연방최고회의 의장과의 관계를 선명히 밝히지 못하고 있는 점은 의심이 가는 대목이다.
22일 러시아공화국 최고회의 특별회의에서 많은 대의원들 사이에서 고르바초프가 이번 사태를 일으킨 장본인이라는 비난과 함께 진상조사특별위원회를 설치하자는 요구까지 제기돼 주목을 끌기도 했다.
반면 한때 「기회주의적 인물」「말만 많은 허풍선이」라는 혹평을 받기도 했던 옐친은 이번 쿠데타 3일간의 행동을 통해 「자유와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요새」라는 평가를 받게 됐고 국제적으로도 「소련 제1의 지도자」(미테랑 프랑스 대통령)라는 찬사를 듣고 있다.
이처럼 고르바초프와 옐친에 대한 평가가 역전됨에 따라 앞으로 「2인의 대통령」 관계가 소련의 향방을 결정적으로 좌우하는 요소로 등장하고 있다고 많은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일본 외무성의 한 소식통은 쿠데타 실패이후 강경 보수파가 정치전면에서 사라질 것은 확실해져 이에 따라 보수­개혁 양쪽에 균형적 입장을 취해온 고르바초프의 입지가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하는 한편 오히려 러시아공화국에 비해 연방의 힘이 상대적으로 약화되는 사태는 불가피하다고 예상한다.
고르바초프는 명목상으로 「복권」 될지라도 쿠데타의 후유증으로 서서히 「사라지는 인물」이 될거라는 판단이 이같은 분석의 배경이 되고 있음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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