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 대여점|액션·에로물에만 매달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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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전국 주택가를 중심으로 2만5천여 곳이 넘게 폭증하고 있는 비디오 소매·대여점들은 대부분 영리에 치중한 운영으로 비디오 애호가들의 문화적 수요를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비디오 프로그램의 내용이나 질적인 수준·유통체계·비디오 프로그램의 전반적인 관리 등의 근본적인 문제점들이 이들 소매 대여점에서 나타나고 있다.
비디오 숍은 주택가·상가를 중심으로 지나치게 많이 난립돼있고 프로그램의 확보도 일부에만 편중된 점이 가장 기본적인 문제다. 일반 대여점들은 고전적이고 예술성 높은 수작 영화들은 외면한 채 극장 개봉물·에로물·액션물을 선호하고 있어 프로그램 내용이 다양하지 못하다. 소비자들은 소규모 대여점의 프로그램들 중에는 선택의 폭이 워낙 좁아 그냥 발길을 돌리거나 자극적인 시간 때우기용 프로로 사거나 빌려야 하는 경우가 많다.
평균 1천 개 내외의 프로를 비치하고 있는 대여점에서 홍콩 액션물이 40%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반면 극장이나 TV에서 보기 어려운 명화들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비디오 제작업자들은 고전물이나 영화팬들이 좋아하는 이른바 「컬트」영화들을 간혹 내놓았으나 비디오 대여점에서 즉각 반품하는 바람에 시청자들은 더욱 좋은 프로에서 멀어지고 있다. 더구나 음악·스포츠·다큐멘터리·아동용 프로그램 등 약간 전문적인 것들은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 가까운 주택가 대여점에서는 대부분 외면되고 있다. 일례로 YMCA 건전 비디오를 위한 시민의 모임이 추천한 좋은 비디오 1백 건 중 한 대여점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경우는 평균 10여 편뿐이고 그나마 비디오 숍마다 프로그램이 겹치고 있다.
또 문학부가 아동용·청소년용 비디오라고 판정하는 표시인 「녹색띠」를 가진 작품들은 거의 찾아보기가 어렵다. 이는 청소년 비디오 매니아가 비디오 대여자의 70%이상인 것으로 추정되는 가운데 건전한 청소년용 프로를 널리 보급하는데 주된 장애요인으로 꼽히기도 한다.
이에 따라 30∼50년대 흑백 고전물, 흥행엔 실패했으나 수준 높은 내용을 담은 영화를 찾는 시청자들을 위해 비디오숍도 점차 대형화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대기업들과 대형 비디오 생산업체들은 날로 커져가는 비디오 유통시장에서 서점의 대형화 추세처럼 대형 비디오점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한 비디오 도매상은 『비디오 대여점이 거점별로 초대형화되면 구매·소비자들의 선호도에 따라 기존의 영세한 비디오숍은 여럿 문을 닫아야 할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채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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