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가르치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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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나는 한국어 선생이다. 서울대학교 어학연구소에서 외국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친다. 국어 선생과 한국어선생은 다르다. 우선 가르치는 대상부터 다르다. 국어선생은 우리나라 학생들에게 그들이 이미 알고 있는 국어를 더 완벽하게 쓰고 말하고 읽고 들을 수 있도록 하는데 중점을 둔다. 그러나 한국어선생이 하는 일은 국어 선생이 하는 일과 아주 다르다.
우리나라 학생의 경우 그 학생이 비록 국민학교 1학년학생일지라도 「먹어도 배가 고파요」를 두고 그 뜻을 모르는 일은 없다. 이 땅에 나서 어머니로부터 저절로 배운 말을 모국어라고 하듯이 저도 모르는 사이에 이런 말은 알게 된다. 그러나 외국인에게 이런 말을 하면 무슨 말인지 알지 못한다. 한국어에 대해 조금 아는 학생의 경우라 할지라도 모르는 것은 마찬가지다. 먹다, 배고프다의 말뜻을 안다고 해도 「-도」를 모르기 때문에 정확한 말뜻을 모른다. 그러면 이 「-도」를 어떻게 가르쳐야 할 것인가. 보다 알기 쉽게 짧은 시간에 정확하게 가르쳐야 하는 것이 한국어 선생의 임무다.
지난 9일 끝난 여름학기에는 미국·독일·호주·캐나다 등으로부터 재외 교포학생 등 참으로 많은 학생들이 왔다. 교포 학생들의 수강 목적은 각양 각색이다. 부모가 한국인이라니까 한국어를 배운다고 하는 학생이 제일 많다.
재미교포 학생의 경우 국적을 묻는 「개인신상카드」에는 미국인이라고 쓴다. 그들의 의식속에는 그들이 미국인으로 자리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은 한국을 부모의 나라로만 보고있다.
하와이에서 온 피터도 그런 학생중의 한사람이었다. 부모가 가라니까 왔고 한국어를 공부하라니까 배우기 시작한 그런 평범한 학생이었다. 그는 다른 학생보다도 자음 「ㅈ과 ㅊ」. 모음 「ㅓ와ㅗ」를 제대로 발음하지 못했다. 시간마다 발음을 교정하고 연습을 시키고 한달이 지난다. 그런 어느 날 나는 채점하다가 낯선 학생 이름 하나를 발견하고 놀란다. 그 시험지에는 이름이 전병철이라고 적혀 있다. 전병철이라는 이름의 학생은 우리 반에는 없다. 몇 번이나 그 이름을 외어 보다 나는 그 학생이 바로 피터인 것을 찾아낸다.
왜 그는 자기의 이름이 전병철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한국에 와서 친척을 만나고 한국어를 배우는 동안 피터는 저도 모르게 자기가 한국인임을 깨닫게 된 것일까. 잊어버린 이름을 찾아가는 과정이 신통하고 소중해 나는 한국어 가르치기에 더 몰입하게 된다.
문희자<서울대 어학연구소 주임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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