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지/칼럼니스트 윌리엄 파프 칼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소 쿠데타 실패로 끝날것/소 국민의 뜻에 정면도전
미국의 저명한 칼럼니스트인 윌리엄 파프는 20일 프랑스 파리에서 발행되는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지에 기고한 칼럼에서 보수·반동세력에 의한 소련의 쿠데타는 조만간 실패로 끝나고 말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 칼럼에서 쿠데타를 일으킨 복고주의자들은 고르바초프 혁명으로 소련사회 저변에 분출돼 흐르고 있는 활력에 정면으로 도전했다고 지적하고,그들이 이 활력을 억압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그의 칼럼 요지.<편집자주>
혁명에는 그걸 뒤집으려는 기도가 항상 따르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러한 기도는 언제나 실패한다. 19일 아침 모스크바에서 일어난 쿠데타에도 이 철칙은 똑같이 적용된다.
앙시앙 레짐(구체제)이 부활되는 경우란 무력충돌에 의해 혁명이 좌절되고 난뒤 외세가 개입하는 경우뿐이다. 나폴레옹을 무너뜨린후 루이 18세를 권좌에 복귀시킨 것은 외국연합군이었다. 그러나 15년간의 복고왕정이 끝난뒤 다시 계속된 것은 혁명하에서 이미 시작된 것들이었다.
모스크바의 쿠데타는 고르바초프혁명으로 가장 많은 것을 잃은 세력이 자신들의 지배체제를 다시 확립하려는 기도에 다름 아니다. 군부와 경찰은 사회적 기능상 당연히 반동적이다. 소련공산당은 더이상 지배 이데올로기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마르크시즘과 함께 존재 이유를 잃었다.
당을 포함한 소련의 지배엘리트들은 더이상 레닌주의와 마르크스주의를 신봉하지 않게됐다. 자신들이 믿었던 체제가 더이상 굴러가지 않으며,국가를 파멸로 이끌고있을 뿐이라는 점도 그들은 이해하게 됐다.
고르바초프혁명은 일어날 수 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그것이 그래도 건설적이고 평화적으로 진행돼왔다면 그것은 고르바초프 덕분이다.
고르바초프는 공산주의 개혁가로 출발했다. 사회주의적 가치를 민주주의적 형태와 결합,소비예트체제를 현대화하고 효율적으로 만드는데 필요한 경제·행정적 테크닉을 도입하려는 게 그의 야심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당연히 불가능한 것으로 판명됐다. 그가 시작한 개혁은 이미 그의 통제를 벗어났고,쿠데타가 일어나기 전까지 그가 한것은 통제불능상태가 폭력으로 폭발하는 것을 근근이 막아내는 일이었다.
그의 운명은 제2러시아혁명의 케렌스키와 마찬가지다. 그역할은 비록 명예롭지만 그것은 실패할 수 밖에 없는 역할이다.
개혁의 실패뒤에 보통 이어지는 것은 혁명의 과격화다. 프랑스혁명의 경우에는 공포였고,러시아혁명의 경우에는 레닌과 스탈린이었다. 혁명에 의해 도출된 새로운 에너지는 전제적으로 통합돼 새로운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권력을 확장하는데 이용돼왔다.
그러나 지금 KGB·군부·당이 하고있는 것은 이것과 정반대의 것이다. 그들은 복고를 위해 소련사회에 분출된 새로운 힘을 억압하려 하고있다.
장기적으로 이번 쿠데타가 결국 성공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번 쿠데타는 고르바초프에 의해 시작된 러시아와 각공화국들의 깊은 변화의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다. 소련이 겪고 있는 경제위기에 대한 치유책을 갖고있지 못하다는 점에서도 이 반동주의자들은 실패할 수 밖에 없다.
비효율적인 경제·산업체제는 고르바초프에 의해 일단 해체됐지만 이를 대신할만한 새로운 체제는 아직 자리잡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이 새로운 독재자들이 이미 파괴된 생산과 분배체제를 다시 부활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다. 외국원조도 기대할 수 없다.
이번 쿠데타를 일으킨 자들은 소련사회에 살아 꿈틀거리는 힘에 정면으로 도전했다.
조만간 그들의 권위는 무너져내리고 말 것이다. 그러고나면 건설적 세력이 다시 힘을 얻게 될 것으로 생각해보고 싶지만 확신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번 쿠데타가 이룩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렇지 않기를 바라지만 더욱 나쁜 쪽으로 가는 문을 연 것으로도 볼 수 있다. 1917년이래 소련국민들은 충분히 당할만큼 당해왔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