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위도 주민들이 보는 부안사태] "백지화땐 우리만 바보될 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3면

전북 부안군 내 12개 읍.면이 원전수거물 관리시설 건설 문제로 요동치고 있는 가운데 정작 후보지인 부안군 위도는 너무도 평온했다.

27일 오후 여객선이 닿은 파장금항에서는 부슬비가 내리는 가운데 주민들이 육지로 내보낼 수산물을 배에 싣느라 손길이 바빴다. 면사무소 소재지인 진리 앞 갯벌에서는 주민 20여명이 조개를 캐는 등 생업에 여념이 없었다.

온 섬을 헤집고 다니며 주민들에게 '폭발 직전의 부안읍내 사태'에 대한 견해를 물어봤지만 대부분 말을 아끼며 좀처럼 속내를 드러내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말문을 연 사람들도 이름과 직업을 물으면 금세 입을 다물어 버렸다.

"원전센터가 건설되면 최대 피해자가 위도 사람들인디, 요새 청와대나 정부.국회의원들 모두 부안읍내 주민들하고만 대화를 하고 있잖소. 그럼 우리는 뭐요?"

파장금항에서 만난 40대 중반의 상인은 "신문이 반대 여론만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며 불만을 쏟아냈다.

위도 주민들은 최근 정부가 반대대책위원회에만 '매달리는 데'대해 심한 소외감을 느끼고 있었다.

치도리에 사는 李모(65)씨는 "큰소리를 내고 폭력을 휘둘러야 관심을 갖는 것 같다"며 "시민단체들이 주민투표 시기와 방법 등을 중재한다는데 핵심 당사자인 위도 주민들에겐 한번도 의견을 물은 적이 없다"고 답답해 했다.

원전센터 유치에 앞장서고 있는 위도발전협의회 위원이자 진리마을 이장인 서영복씨는 "정부가 반대대책위와 대화하고 우리를 무시하면 우리도 집단 행동에 나설 수 있다"고 말했다.

위도에 대한 보상 및 지원방법 등에 대해 정부의 확실한 입장표명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도 적지 않았다.

원전센터 반대 여론이 확산되면서 위도 주민들 사이에 불안감 또한 커지고 있었다.

50대 주민은 "원전센터가 백지화되면 우리 위도 사람들만 바보가 되게 생겼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정부와 부안군을 믿고 앞장서서 일한 사람들은 어떻게 되느냐"는 볼멘소리도 나왔다.

원전센터 반대 시위가 폭력성을 띠고 있는 데 대해 당혹스러워하는 주민들도 있었다.

갯벌에서 조개를 캐던 한 할머니는 "부안 사람들이 저렇게 죽기 살기로 반대할 줄 몰랐지. 괜히 찬성 도장을 찍어 이 분란을 일으켰나 하고 후회가 되기도 해"라고 말했다.

이 같은 분위기 속에서 유치에 반대하는 주민들이 늘고 있어 눈길을 끌었다. 위도발전협의회 측은 지난 7월 찬성하는 주민이 90% 이상이었으나 최근 80%대로 떨어졌다고 분석한다.

그러나 반대 주민들의 모임인 '위도지킴이'서봉신(51) 공동대표는 "찬성 서명을 받을 때 가구당 3억~5억원씩 현금 보상을 해 주겠다고 말한 게 거짓으로 드러나면서 상당수 주민들이 반대로 돌아섰다"고 주장했다.

위도 내 반대파 주민들은 지난 10일부터 면사무소 앞에서 천막 농성 중이며 매일 오후 6시면 반핵 홍보 비디오를 시청하거나 토론회를 열고 있다.

27일 현재 위도 주민은 1천9백여명이며, 대부분 어업으로 생계를 잇고 있다. 지난 7월 유치 찬반투표 당시 투표권이 있는 주민 가운데 90% 이상이 원전센터 유치에 찬성표를 던졌었다.

위도=서형식 기자<seohs@joongang.co.kr>
사진=양광삼 기자 <yks2330@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