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쇠고기 협상' 이긴 걸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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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안양 국립수의과학검역원 신종질병연구소. 한.미 쇠고기 기술회의의 양측 협상단은 한 치의 양보도 없었다. 고함소리는 간간이 복도까지 흘러나왔다. "미국은 광우병 발생 국가다. 뼛조각이 나왔으니 반송하는 건 당연한 조치다."(한국) "뼛조각은 품질 문제지 위생 문제가 아니다. 뼛조각 유해성을 먼저 증명하라."(미국) "우리가 뼛조각의 유해성을 증명할 의무는 없다."(한국)

오후 10시30분까지 이어진 마라톤 협상은 결렬됐다. 농림부 이상길 축산국장은 "우리는 국민 건강을 걱정하는데 그쪽은 자국의 축산업자 이익만 대변한다"고 말했다. 그는 취재진에 단호한 표정으로 "맘대로 쓰시라. 아무것도 말할 게 없다"며 자리를 떴다. 미국 대표단도 굳은 얼굴로 "노 코멘트"로 일관하며 사라졌다. 협상장을 가로막은 시위대의 희망대로 일단 미국산 쇠고기는 들어오기 힘들어졌다. 과연 우리가 이긴 것일까.

문득 2001년이 떠오른다. 유럽의 광우병 소동으로 국내 쇠고기 수요가 뚝 떨어지자 한국낙농육우협회는 호소문을 냈다. "광우병이란 용어를 BSE(소해면상뇌증)로 바꿔달라"고. 농림부도 "쓸데없는 오해와 공포로 국내 축산농가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고 동조했다. 그런 축산농가들이 올해는 광우병 공포를 최대한 부각시키고 있다. "얼굴 없는 공포, 광우병""광우병 걸리려고 쇠고기 수입하나"라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이해관계가 걸린 축산농가의 이중 잣대야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길게 봐야 할 농림부까지 덩달아 춤을 추는 인상이다. 이번 협상에서도 미국 측이 느긋한 입장이었다. 미국은 '뼈 없는 쇠고기'만 수입한다는 우리 정부의 입장을 전면 거부했다. 그들은 5월 국제수역사무국(OIE) 총회를 내다보는 게 분명했다.

만약 미국이 OIE 총회에서 '광우병 위험이 없는 국가' 판정을 받는다면 뼛조각 논란은 무의미해진다. 한국이 OIE의 판정을 따르지 않을 명분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뼛조각이 아니라 갈비나 부산물까지 수입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위한 전제조건으로 약속했던 사안이다. 쇠고기 수입을 막고서는 FTA 협상의 타결을 기대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5월 OIE 총회에서 미국이 광우병 족쇄에서 풀려난다면 어찌 될까. 자꾸 '게도 잃고 구럭도 잃는다'는 옛말이 머리에 맴돈다.

박혜민 경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