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론에 부쳐지는 방위비 논의(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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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방위비 비중의 조정에 대한 검토가 공개적인 논의의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작년 연말 한국개발연구원이 국방비 비중의 재조정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한데 이어 최근에는 전경련 부설 한국경제연구원이 국방비의 점진적 삭감이 고려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시 지난 16일 한국개발연구원에서 열린 예산정책협의회에서는 경제능력에 비추어본 방위비 부담의 정도를 국가별로 비교,부담의 무거움을 객관적 수치로 증명해 보이는 시도까지 나타나기에 이르렀다.
이같은 일련의 논의를 보면서 우리는 오랫동안 성역에 갇혀있던 방위비 부담에 관한 논의가 공개토론의 장소로 나오게 된 것을 확인하고 이를 바람직하고도 필요한 현상으로 평가하고자 한다.
방위비의 공론화를 불러온 동기는 국가안보에 미치는 주변환경의 변화와 예산의 경직성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어느때 보다 팽배해질 수밖에 없었던 재정의 현실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주로 경제학자,좁게는 재정전문가들을 중심으로 제기된 방위비 비중 축소론의 논거도 경제 내지 재정 측면의 필요성에 국한되는 경향을 나타냈던 것이다.
현재의 방위비 부담이 적정한 수준인가,아닌가에 대해서는 섣부른 결론을 내리기 어렵다. 그래서도 안될 일이다. 왜냐하면 방위비의 크기는 축소론을 내세우는 쪽에서 제시한 경제적·재정적 근거들을 감안하는 한편으로 국방담당자,또는 안보전문가들의 견해도 아울러 고려한 다음에야 결정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기밀과 관련되는 세부항목들은 물론 공개될 수 없겠지만 적어도 국방비의 총액과 그것의 GNP비중 및 예산비중의 차원에서는 현상유지론이나 확대,또는 축소론의 과학적 근거들이 공개적으로 제시되고 이를 통해 합리적 결론이 도출되었으면 하는 것이 우리의 바람이다.
물론 건설적이어야 할 공개논의들이 엉뚱한 속셈과 이데올로기적 편향에 의해 불필요한 언쟁을 증폭시켜서는 안될 것이며 그 반대로 얼마간의 번거로움을 구실삼아 다시 이 문제를 밀실로 끌어들이려는 기도가 있어서도 안될 것이다.
현재 방위비 축소 논의의 발단이 되고 있는 예산의 경직성과 관련해 한마디 첨언하자면 방위비를 포함해 모든 경직적인 지출은 비용의 효율적 사용이라는 측면에서 신중하게 논의되어야 할 성질의 것이라고 우리는 본다.
예컨대 같은 비용으로 보다 큰 안보 효과를 낼 수 있는 사업이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모색해 가야 할 것이다.
오래전부터 민간부문의 산업활동에서 적용돼 온 갖가지 첨단의 생산성향상 기법들을 국방을 포함한 정부활동 각부문의 현실에 맞게 고쳐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한가지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국방비에 관한 의견을 잘못 제시했다가 혹시 사상적 의심을 받을지 모른다는 우려와 주눅이 오랫동안 우리의 정신풍토를 얼룩지게 해 왔음을 생각할 때 이제야말로 이 묵은 때를 걷어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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