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할 일은 수돗물의 질 향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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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정부는 그동안 논란을 되어왔던 생수의 국내시판을 내년부터 허용하고 생수제조 및 시판허가권을 보사부장관에서 시장·도지사에게 위임하는 것을 글자로 하는 식품위생법시행령을 국무회의에서 통과시킨 바 있다.
고도의 경제성장과 급속한 산업화로 인한 환경공해, 특히 수질오염 문제를 생각해볼 때 당국의 의사결정은 몇 가지 측면에서 심도 있게 재검토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생수의 국내시판을 허용했을 경우 야기될 수 있는 문제점이다.
첫째,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물이 지니는 특성이 차·코피와 같은 기호품이 아니란 점이다. 따라서 생수·수돗물로 상품을 차별화해 놓고 소비주체의 취향·경제적 능력에 따라 소비하게끔 하는 발상은 대단히 불합리하다고 생각된다.
둘째, 보다 중요한 문제로 생수의 시판가격이야 어찌되든 정책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계층에 있는 사람들과 소위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은 생수를 마실 것으로 보인다. 그럴 경우 수질오염문제가 사회의 공동관심사가 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의구심이다.
생수의 국내시판은 계층간의 갈등을 심화시키고 사회를 이끌어 가는 계층의 집단이기주의를 야기시켜 수질오염문제에 대처하는 정부당국의 의지력을 둔화시키게 되리라 여겨진다.
셋째, 생수의 적합한 기준이 무엇이며 또한 생수의 공급능력이 수요를 충족시킬 정도로 풍부한지, 그리고 현재와 같이 소규모 영세기업들에 의해 운영될 때 위생상의 문제점과 일반 수돗물에 대한 소비자의 불신을 어떻게 해소시킬는지에 대한 종합적인 검토가 충분히 있었는가 하는 문제다.
넷째, 생수의 국내시판 허용은 법을 집행하는 국가권력으로서의 위신을 크게 실추시키게 된다는 점이다. 그동안 법적으로 금지된 생수의 시판을 묵인해 준 것은 무엇 때문이며 법 집행의 일관성을 상실시킨 책임이 누구에게 있었는가에 대한 한마디 해명도 없이 이제 와서 무슨 명분으로 시판허용이라는 방침을 세우게 되었는지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
물이 지니는 공공의 특성과 장기적인 측면에서 깨끗하고 질 좋은 수돗물의 안정적 공급을 고려할 때 보다 더 시급하고 중요한 과제는 생수의 국내시판 허용이라는 근시안적이고 집단 이기주의적인 정책대안보다 수돗물의 공급가격을 다소 올리는 한이 있더라도 기존 수돗물의 질을 개선시키기 위한 다각적이고 범국민적인 대책마련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제 우리들에게 있어 물이란 모든 국민이 공동으로 소비하여야 할 귀중한 공공자산이기 때문이다. 김덕수<31·한국과학기술연구원 기술정보실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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