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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령의 家] 김장복 교수의 강화도 미제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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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살짜리 대학1학년 처녀들이 등산을 갔다. 거기서 한양대 건축과 학생들 한 팀을 만났다. 나중에 어른이 되어 집을 지으면 설계를 맡아주기로 장난스런 약속을 했다. 잊혀진 듯했던 그 약속은 30년 후 정확하게 지켜졌다. 강화도 민통선 안쪽 양오리에 있는 '미제루(未濟樓)'는 그렇게 오래 전부터 준비된 집이다.

미제루 안주인은 이제 열두가구 되는 이 마을 양오리 주민이 다 됐다. 어제는 동네 부인들 모두 모여 김장을 했는데 사랑양반들도 김칫소 먹으러 다들 따라오지 않았겠느냐며 눈을 동그랗게 뜬다.

부부는 등산을 즐기고 나무와 풀을 들여다보기 좋아하고 흙냄새에 이끌리는 사람들이었다. 아이 셋이 웬만큼 자라자 둘은 씨앗을 묻을 수 있는 땅있는 집을 그동안 간절히 원해왔다는 걸 알게 됐다. 합의는 단숨에 이뤄졌다. 시간만 나면 땅을 보러 다녔다. 경기도.강원도와 충청도를 종횡무진 누볐다. 돈은 넉넉지 않은데 이상은 컸다. 남향일 것, 비스듬한 언덕위에 있을 것, 기존 동네에서 멀지 않으면서도 독립적일 것, 전망이 멋질 것. 서울 출퇴근이 가능할 것, 그러면서 비싸지 않을 것. "그런 조건을 다 만족시키는 땅이 어디 쉽겠어요. 남향을 찾는 것만 해도 얼마나 어려운데… 그래도 그런 땅이 반드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았지요."

그러다 우연히 여기 양오리까지 오게 됐다. 낙타 등처럼 휘어진 뒷산이 우선 마음에 들었다. 터 앞에 십여그루 서있는 참나무도 좋았다. 까다롭던 조건을 모두 만족시키는 땅이었다. 민통선 안이라 가격이 다른 곳의 반값인 게 무엇보다 좋았다. 평당 10만원을 주고 산아래 임야 5백여평을 샀다(1999년 봄). 오래 꿔왔던 꿈이라 바로 집짓기에 들어갔다.

예전의 약속이 떠오른 건 그때였다. "그 날 같이 등산갔던 친구는 그 건축과 학생 하나와 커플을 이뤘거든요." 삶이란 때로 이렇게 단순해서 우리를 유쾌하게 만든다. 그래서 연이 닿은 인토건축(02-555-2605) 방철린 소장에게 집의 설계가 맡겨졌다. 미제루란 당호도 그가 붙였다. '미제(未濟)'는 주역 64괘 중 맨 마지막 괘의 명칭에서 따왔다고 한다. 이 집 바깥주인 김장복 교수( 홍익대 공대)는 미제루 홈페이지를 만들어 거기다 이렇게 써두었다. "미제는 made in USA가 아니라 세상만물은 늘 바뀌고 순환하는 속성을 가졌다는 뜻입니다."

미제루의 두드러진 특징은 거실에서 바로 연결되는 누마루에 있다. 길이 3칸 폭 1칸의 누마루가 집 앞부분에 딸려있는 집이다. 그래서 당호도 헌(軒)이나 재(齋)가 아니라 '누(樓)'를 붙였다. 이 누는 거실의 연장이면서 마당의 연장이고 식구들이 모이는 사적 공간이면서 동네 사람들에게도 언제나 열려있는 공적 공간이다. 실내도 아니고 실외도 아닌 이 공간은 서양건축에는 없던 개념이다. 당연히 우리 옛 정자나 대청마루에서 아이디어를 따왔다.

나는 여기서 바라보는 늙은 참나무들이 이 집의 정수라고 생각한다. 11월은 세상의 푸른 것들이 모두 자취를 감추는 스산한 계절이다. 그런데도 참나무는 나름의 기막힌 풍경을 만들어 미제루 위에 드리운다. 지금은 허공을 정교하게 무늬지우는 빈 가지의 리듬이 볼만한데 잎이 돋을 때, 녹음이 무성할 때, 단풍이 물들 때, 도토리들이 별똥인 양 아침마다 이슬젖은 마당 가득 떨어질 때 두루 참나무의 덕은 이 집을 포근하게 덮을 것이다. 그 고목들을 실내가 아니라 바람을 맞는 누에서, 눈높이로 마주볼 수 있다는 것은 결코 아무나 누릴 수 있는 호사가 아니다. 이 나무엔 때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오색딱따구리가 날아온다. 줄기 위에 희귀한 사슴벌레가 점잖게 앉아 있을 적도 있다. 난생 처음 도토리 가루를 몇되나 추수해 묵을 쑤는 기쁨도 알게 해줬다.

미제루 안방의 위치는 독특하다. 누 마루와 직선으로 마주보는 곳에 유리가 많이 달린 방이 안방이다. 전혀 은밀하지 않다. "사방에서 다 들여다 보이는 집이니 마음대로 옷을 갈아입기도 어려워요. 화장실에 가서나 밖이 덜 보일까…" 그러나 안주인은 그걸 유쾌해하는 기색이다. 안방에서 보이는 누 마루와 그 너머 고목과 또 그 너머 앞산까지 일렬로 세워두면 자신이 우주의 중심 속에 들어 앉은 듯하다고 흡족해 한다. 집의 형태는 디귿자 꼴, 누 마루까지 합하면 미음자가 된다. 방은 별채처럼 서로 독립돼 있는데 양쪽에 창이 달린 복도로 서로 꿰이듯 연결된다. 유리 너머 건너편 공간이 겹겹이 보이는 실내, 외부로 환하게 열린 복도, 휘어진 공간의 그윽함이 이 집에 옛 한옥같은 유현한 깊이를 얹어준다.

집의 진입도 재미있다. 대웅전을 향해 올라가듯 철도 침목으로 놓은 계단을 일고 여덟개 올라가야 현관이 나온다. 머리 위엔 누 마루가 절의 만세루처럼 가로 걸려 있다. 계단을 다 오르면 단정한 안마당이다. 자갈을 깔아둔 고요한 이곳 역시 옛 한옥의 차용. 비워두었던 안마당 한켠에 지난해 야생 맥문동을 옮겨심었다. 겨우내 잎이 푸른데다 줄기를 솟구쳐 피워올리는 꽃이 곱고 뿌리를 달여먹을 수도 있는 식물이다.

이 집 주변은 온통 야생의 약초밭이다. 뒤 언덕에 둥글레 뿌리가 실하게 자라고 귀하다는 천마도 흔하게 발에 채이고 당귀도 절로 솟아오른다. 강화에 오면 부부는 자연 산으로 들로 나는 듯 쫓아다니게 된다. 뒷산에서 으름덩굴을 캐다 마당에 시렁을 만들었고 진입로엔 부부금실에 좋다는 자귀나무를 쌍으로 심었다. 처음 본 풀꽃들이 터도리에 지천이었다. 그 형태와 색감의 아름다움에 뒤늦게 몹시 반했다. 둘은 야생화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원래 공부 좋아하는 남편은 일단 책을 잔뜩 사들여 이론으로 무장하고 아내는 몸으로 뛰었다. 아내가 공들여 손톱만한 꽃을 피워놓으면 남편은 얼른 화판 위에 카메라를 들이댔다. 분명 공대 교수라는데 이집 서재엔 온통 야생화 관련 책, 나무에 관한 책들로 즐비하다. 풍경사진 찍는 법, 야생화 촬영법 같은 제목도 보인다. 디지털 카메라로 야생화를 찍어 홈페이지에 올리는 것은 최근 몇년간 김장복 교수의 가장 큰 즐거움이었다.

"각종 창포와 분꽃이 지고 아기범부채가 꽃대를 세운다. 긴 기다림에 비하면 꽃이 그리 크지 않은 편이지만 꽃바탕의 호랑무늬가 기다린 보람을 준다"라는 감상이 적힌 사진은 가위 전문가의 솜씨다. 그저 잡초라고 부르는 것과 이름을 알고 들여다보는 것은 사랑의 깊이가 달라지더라는 것도 강화에 와서 배웠다. 미제루 둘레에 심긴 야생화는 이제 줄잡아 2백종이 넘는다. 3년 만에 이룬 일이다. 이곳을 천리포 수목원 같은 곳으로 만드는 것이 지금 이 부부의 꿈이다. 실내는 마흔여섯평, 건축비는 비교적 많이 먹혀 평당 4백만원 남짓 들었다.

"과연 미제루 둘레에 얼마나 많은 꽃을 피우게 될는지 알수가 없다. 시간이 흘러가면 갈수록 전혀 알지 못하던 꽃이 나타나곤 하니 말이다. 새로운 꽃을 발견할 때마다 돌로미테(김교수 부부가 꽃구경을 위해 여행한 곳)의 에델바이스가 생각난다. 모래밭에서 모래 한알씩 들춰가며 뭔가 찾았다고 즐거워하지만 도대체 모르는 것이 이렇게 많을 수가 없다. 하지만 많이 알지 못하는 게 뭐 대수로운 일인가. 하나라도 새로운 것을 찾아내는 즐거움이 얼마나 행복한가. 그저 삶이란 것이 이러한 자잘한 행복의 점철로 이어질 수 있다면 또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이 말 속에 담긴 미제루 주인 부부의 인생관, 나 또한 거기 고개숙여 재청한다.

김서령 생활칼럼니스트

사진=변선구 기자

***주전자 손잡이에도 자연美가 …

소나무와 잣나무로 손잡이를 만든 미제루 고유의 주전자다. 흔한 스테인리스 주전자를 사서 플라스틱 손잡이를 떼어내고 나사못으로 나무토막을 고정했다. 나무의 휘어진 굴곡이 손의 굴곡과 딱 들어맞는다. 사용하는 사람의 눈뿐 아니라 촉각까지 흐뭇하게 만들어주는 물건이다. 인체공학이란 자연 속에 이렇게 널려있었구나. 손때 묻히는 세월이 지나 나무에 윤이 돌면 주전자의 가치는 더욱 업그레이드 될 것이다. 도시는 낡은 것을 쓰레기로 만들지만 자연은 낡은 것에 가치를 얹어준다. 신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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