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의 농협으로 거듭 태어나라(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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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농협이 15일로 창립30주년을 맞는다. 「보릿고개」라는 말로 대변될 수 있는 30년전의 상황을 돌이켜 볼 때 이제는 쌀의 잉여가 고민거리가 된 오늘의 현실은 격세지감을 느끼게 해준다.
그러나 그럼에도 오늘의 농촌현실과 농협이 처한 상황은 결코 밝지가 않다. 외부로부터는 UR협상으로 인한 농산물 수입개방,금융시장 개방이란 태풍이 눈앞에 다가와 있고 내부적으로도 일손부족,노임상승,기타 영농비 상승이라는 쉽게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이에 따라 농민들은 불안감과 좌절감에 빠져 영농 의욕을 잃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때문에 농협으로서는 창립 30주년의 날을 그동안의 성장을 자랑하고 자축하기 보다는 그 막중한 책무를 새롭게 인식하고 사명감을 다지는 날로 삼아야 옳다. 현 시점에서 농협이 무엇보다도 먼저 해야할 일은 농민들에게 그래도 살 길은 있다는 희망과 자신감을 회복시켜 주는 일이라고 본다.
그것은 불안과 절망감에 휩싸인 농민들을 위로하기 위한 단순한 말치레를 하라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여건속에서도 우리 농업이 살아남고 경쟁에서도 이길 수 있는 새 영농의 방향과 방법을 제시하고 지원책을 마련하라는 것이다. 앞으로의 여건이 대단히 어려워지리라는건 분명한 사실이지만 우리는 정부의 과감한 제도 및 재정적 지원과 농협의 다각적인 현실타개 노력이 합쳐지면 우리 농업의 앞날이 반드시 절망적인 것만은 아니라고 본다.
우리처럼 토지면에서는 소국인 일본이나 유럽 각국들이 기술농업·특화농업 등을 통해 토지중심 농업대국들의 공세속에도 자국 농업을 잘 유지·발전시켜 나가고 있는 것이 그 산 증거다.
문제는 현재 농가소득 가운데 32%나 되는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쌀의 잉여와 수입개방 압력인데 이는 농협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문제이므로 수입유예기간 연장을 촉구하면서 정부의 노력을 지켜볼 수 밖에는 없을 것이다.
농협으로서 서둘러야 하고 또 할 수 있는 일은 그 경제사업을 가일층 강화하는 일이다. 농협의 주사업은 당연히 농산물의 판매·영농 및 생활용품의 구매 등 경제사업이 되어야 할 것이나 현재 우리 농협은 그것이 20% 안팎 밖에 안되고 신용사업이 추가되고 있는 기형아적인 사업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이 때문에 농산물의 농협을 통한 판매는 총생산량의 13%밖에 되지 않는 실정이다. 이는 물론 유통시설의 확충등 정부의 재정지원이 필수적인 것이나 농협으로서도 과감한 조직·기구개편을 통해 경제사업 위주의 기관으로서 새로 태어나는 작업에 착수해야 한다.
이제 재래식의 농업구조로는 살아 남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그러나 농업구조의 개편과 유통구조의 혁신,그리고 사회변화 추세에 맞춰 농산품의 고급화,현지 가공을 통한 농산품 부가가치의 증대,수출용 농산물의 재배,대단위 농산단지 조성 등의 시책을 펼쳐 나간다면 희망은 있다.
농협은 이러한 발전적 개혁을 위한 정책의 선봉이자 농민의 심부름꾼이 되어야 한다. 그를 위해선 먼저 지난 30년간 비대해지고 관료화된 중앙조직의 개편을 포함한 뼈를 깎는 자기혁신을 창립 30주년을 맞아 다짐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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