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눈가림발표로 ″어거지 명성〃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5면

올해 초 음대 입시부정 사건이 터지자 대뜸 『빛 좋은 개살구들 같으니라구. 썩는 냄새가 난다』는 촌평이 여기저기서 나왔다. 돈을 잘 벌려면 유명교수가 돼야하고, 그러자면 그럴싸한 연주무대에도 자주 서야한다는 생각에서 껍데기 실력을 쌓는데 아까운 시간과 노력을 허비하며 돈맛에 취해 있던 일부 음악인들이 마침내 덜미를 잡혔다는 것이다.
문화예술활동의 급속한 양적 팽창에도 불구하고 우리문화계엔 「걸작」이 여전히 드물다. 너도나도 알맹이 없는 실적만 쌓고 있다는 증거다.
무용공연의 경우 지난 81년 한 햇 동안 1백37건이었던 것이 90년에는 4백81건으로 약 4배나 늘었지만 손꼽을 만한 수준급 공연은 여전히 드문 실정.「공연계」라는 말이 공공연히 나돌 만큼 서로 자신의 제자들에게 「표팔이」나 강요하고, 그래서 『아무개가 몇명의 관객을 동원했다』는 실적(?)을 빼면 춤문화 발전에 밑거름이 될만한 것을 전혀 남기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까닭이다.
이같은 사정은 음악계도 마찬가지다. 실기지도교수의 연주회 때마다 울며 겨자 먹기로 표를 팔아주는데 지친 학생들 중에는 『시간이 없다고 제대로 가르쳐 주지도 않는데 다만 아무개 교수 사사했다는 기록을 남기기 위해 입장권을 수십장씩 사서뿌릴 필요가 있겠느냐』며 다른 교수를 찾아 떠나기도 한다.
대학교수들이 임용이나 승진에 필요한 점수를 따기 위해 하는 공연·전시·논문발표야말로 실적쌓기용 문화예술활동의 대표적인 예다. 음대교수들 중에는 자신의 형편없는 연주가 들통날까봐 서울의 대학교수는 지방 소도시로, 지방대학 교수는 서울로 자리를 바꿔 몇몇 친지들 앞에서 몰래 공연을 치르기도 한다. 서울 예음홀에서 소문없이 연주하고 대관 및 공연증명서를 받아간 지방의 P대 A교수(피아노), C대 S교수(바이얼린)등이 바로 그런 경우. 악보를 제대로 외우지 못해 연주가 중단되기까지 했던 S교수는 다음날 차마 자신이 나서지는 못하고 가족을 대신 보내 공연증명서를 찾아갔다.
최근 지방 K대에서는 느닷없이 『○○과 연구회보』라는 학술지가 발간돼 대학원생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알고 보니 임용점수를 따기 위해 발표논문편수를 채워야하는 이 대학의 한 교수가 전문학술지의 지면을 얻을 수 없는 함량미달의 논문을 발표할 목적으로 소속학과의 이름을 빌려 학술지를 「창간」했던 것. 『○○과 연구회보』라는 식의 이름으로 부실하게 발간되는 부정기 간행물의 대부분이 이런 「실적증명용」이다.
특히 보직을 맡은 노교수들은 제자의 연구실적에 자기 이름을 얹어 공동명의로 발표하거나 기존의 관련서적들을 모자이크한 알맹이 없는 논문들을 내놓기 일쑤. 서울의 K대 L교수(정치학)가 매년 연구논문을 발표하는데도 학계와 대학원생들 사이에 「논문없는 원로학자」라는 평이 자자한 것은 바로 그런 까닭이다.
특정 예술가 자신이나 그 단체의 주가(?)를 높이기 위한 실적용 해외공연·전시도 점점 늘고 있다. 한국인들의 해외나들이가 어렵던 시절외국의 한인교회나 대학강당에서 학예회식 행사를 치르고도 「대성공을 거둔 해외순회공연」으로 둔갑시켜 국내선전용으로 두고두고 우려먹던 관습이 아직도 남아 어거지로 실속없는 해외공연에 나서는 단체가 부지기수다.
이럴 경우 단장이나 인솔교수가 참가단원들로부터 실제 비용의 몇 곱절에 해당하는 수백만원씩을 거둬 챙겼다는 등의 잡음과 말썽이 있는가 하면 『뭐 때문에 그따위 형편없는 공연으로 나라망신까지 시키느냐』는 현지 교민들의 불평이 뒤따르기도.
미술가들의 해외전시 또한 덧없는 실적용인 경우가 흔하다. 외국 무명화랑을 빌려 전시회를 열고는 「뉴욕전」이니,「파리전」이니 하는 말로마치 외국 수준급 화랑의 초대전이라도 치른 것처럼 실적과 경력을 잡아 늘린다.
협연자 선정 및 음악콩쿠르심사를 둘러싼 말썽도 결국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명성을 얻고 실적을 쌓으려는 풍조와 무관치 않다. 우수한 교향악단과의 협연이나 콩쿠르 입상경력이 연주자를 평가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이용되기 때문에 권력이나 금력을 남용해서라도 기회를 잡으려드는 것이다. 외국 유명교향악단의 내한 공연 때 거물급 인사인 부친의 입김 덕에 무리하게 협연했다가 형편없는 연주로 빈축를 산 피아니스트의 이야기는 인구에 회구되고 있다.
음악평론가 이상만씨는 『어거지로 만들어낸 경력이나 실적은 문화예술 발전의 저해요소일 뿐』이라고 단언한다. 본말이 뒤바뀐 「실적추구열병」은 현재 중증이어서 우리 문화계가 이를 치료하지 않고는 결코 건강해질 수 없다는 것이다.
『이름 뒤에 줄줄이 나열하는 껍데기실적 따위에 기대지 않고 작품이나 논문, 그 자체로 승부하겠다는 치열한 전문가 의식이야말로 참 문화를 꽃피우는 밑거름이라고 새삼 강조해야 하는 게 우리문학계의 현주소』라며 쓰게 웃었다. <김경희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