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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만에 빗장 푼 술시장/「편한 장사」끝나 경쟁 치열해질듯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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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외국 술에 맞설 국산술 개발 기대
독점과 이권의 대명사 격이던 2조원 규모의 술시장이 20년만에 빗장이 풀린다.
국세청의 이번 주류제조 면허개방조치는 그간 편한 장사를 해오던 기존 주류업체가 앞으로 춘추전국시대를 맞는다는 단순한 「업계 판도변화」의 선이 아니라,정부가 오랫동안 뜸들여오던 「행정규제 완화」노력의 가장 가시적인 성과의 하나다.
이는 갈수록 거세지는 외국의 술 개방압력에 대응하기 위한 수순이기도 하다.
사실 술시장 개방은 때늦은 감이 없지 않다.
국세청이 스스로 설명하고 있는대로 그간 너무 오랫동안 일부 업체만을 온실속에 넣어두는 바람에 폐해가 한두가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술제조업체는 기존상품만으로도 돈벌이가 잘되는 마당에 굳이 다양하고 고습스런 술을 개발하는데 신경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 국세청도 시시콜콜하게 알콜도수까지 제한하는등 규제와 개입으로 일관,주류업계의 창의력과 잠재력을 잠재워온 것도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단기적으로 외국 주류와의 경쟁력을 높여 국내시장을 방어하고 장기적으로 외국에 수출을 늘려가길 바라는 것은 무리다.
국세청과 주류업계 관계자들은 술시장의 빗장을 풀어놓는다 해서 당장 수많은 기업들이 앞다투어 시장에 뛰어들 것으로 보지는 않고 있다.
주류시장이 한정돼 있고 기존업체들의 아성이 견고한데다 상당한 규모의 시설투자를 해 실익이 있는지를 2∼3년간 관망하며 주판알을 굴려보지 않겠느냐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다만 올해 당장 주류제조면허를 일단 신청하는 업체들은 상당수 생겨날 것으로 보인다.
우선 가장 관심을 끄는 맥주의 경우 소주업계의 맏형격인 진로가 진출할 것이 확실시된다. 또 롯데·해태·미원·금복주 등 주요기업의 맥주시장 참여설도 오래전부터 나돌고 있다.
이 가운데 진로측은 이미 맥주생산을 전제로 충북 진천 주류단지내에 부지를 확보해둔 것은 물론 외국사와 합작으로 맥주회사를 세우기 위해 외국의 유명회사들과 접촉을 가져왔다.
주류업계 관계자들은 맥주회사를 차리는데 기존 주류업체의 경우 2천억∼2천5백억원,신규업체는 6천억∼7천억원의 비용이 들 것으로 점치고 있다.
면허를 얻는 날로부터 생산하기까지는 적어도 2년∼2년6개월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진로가 만드는 맥주를 마시려면 빨라도 94년은 돼야 한다는 얘기다.
이같은 사정 때문에 맥주시장에 새로 진출하는 회사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93년에 개방되는 소주의 경우 이미 두산그룹이 백화소주의 부활을 기정사실화하고 있고 이밖에 롯데·해태 등도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소주는 올해말부터 「자도주 소주판매제도」「주류도매장 판매구역제」가 폐지됨에 따라 기존업체들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데 대기업이 참여하면 지방업체들이 큰 타격을 받을 전망이다.
하지만 최근 소주의 판매가 갈수록 줄어드는등 사양산업화되고 있는 마당에 굳이 소주시장에 욕심을 내는 기업이 많겠느냐는 분석도 없지 않다. 아무튼 술업계의 경쟁은 치열해지겠지만 소비자들은 더 값싸고 좋은 술을 다양하게 마실 수 있게 될 것이고 그런 것이 규제완화의 이점인 것이다.<박의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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