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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 새모습 보여줘야 한다/전문가대담(막오른 남북유엔시대:5)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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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남북 대결서 실리대화로”/북한도 새 외교지평… 자세변화 불가피/자축보다 책임갖고 주도력 발휘 절실/박쌍룡 한국해외협력단부총재·전유엔대사/정종욱 서울대교수 국제정치학
▲박쌍룡 부총재=남북한 유엔가입안이 오늘 안보리에서 처리돼 오는 9월17일 총회 가결절차만 남았습니다. 남북한 유엔가입문제가 만장일치로 이의없이 처리된 것은 유엔의 테두리내에서 대립을 지양하고 화해적으로 서로 잘 일하기를 바란다는 시사적 권고로 해석할 수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정종욱 교수=동시 가입이라는 새로운 시대가 시작된데 남다른 감회를 느낍니다. 보편성의 원칙에 따라 당연히 회원국이 됐어야 함에도 냉전논리에 의해 외곽에만 머물고,정통성 경쟁을 벌인 가슴아픈 역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한 주권국이 유엔회원국이 되는 절차상의 의의를 넘어 유엔이란 국제무대에서 협력하는 가운데 통일의 길을 열 새시대를 맞았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박=얼마전 선진7개국 정상회담 성명에서도 냉정종식후 세계질서가 유엔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런 시점에 남북한이 유엔에 가입한다는데서 의미를 부여할 수 있습니다. 유엔동시가입으로 동북아 평화구도 형성과 세계평화유지에 기여한다면 세계사적 의의가 있다고 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정=그렇습니다. 2차세계대전후 유엔은 세계정부의 이상을 지향하며 출범했으나 냉전의 틈바구니에서 역할을 제대로 못했습니다. 남북한의 불행한 사건도 거기서 비롯된 것이죠.
탈냉전시대가 되며 걸프전에서 보여준 것처럼 이제 유엔이 국제평화를 위해 적극적인 역할을 할 시점인 것 같습니다.
▲박=저도 동감입니다. 유엔가입은 40여년동안 추구해온 우리 외교의 과업을 성취했습니다. 우리도 이제 유엔이란 국제무대에 등장하는 계기가 마련됐으니 거기에 걸맞는 경륜과 성숙함도 갖춰야 하겠지요.
▲정=일부에서는 유엔가입으로 당장 남북관계에 큰 변화가 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으나 급격한 변화는 전망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도 너무 들뜨는 분위기가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차분하게 무엇을 할 것인지를 생각하고 실천해 나가야지요.
▲박=유엔가입 초기에는 특히 북한의 국내사정 때문에 대결적,경쟁적 태도를 표시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렇지만 유엔가입때 유엔헌장상 의무를 준수하겠다고 서약했고,국제현실을 직시한다면 종전같은 이념적이고 경직된 태도는 점차 현실감각에 맞춰 나가지 않겠습니까.
▲정=그렇습니다. 당장 남북관계의 급격한 변화는 없겠지만 분쟁의 평화적 해결,무력불사용이란 유엔의 평화정신을 지키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북한 외교행태도 다소 달라질 수 밖에 없을 것이란 희망적 생각을 갖게 합니다.
▲박=그같은 분위기가 조성돼 북한이 현실외교로 전환하면 유엔테두리 내에서 많은 중요문제를 다룰 것이고,대화와 협의를 축적할 기회를 자주 갖게 될 것입니다. 남북이 이 기회를 충분히 활용해 상호신뢰를 구축하고 동질성을 회복하는 계기로 삼을 수도 있으리라 봅니다. 기상예보,환경보존,에너지,대륙붕개발,군축 등 많은 공동의 문제를 다루며 상호입장을 협의하고,조정할 필요도 있게 될 겁니다.
▲정=유엔가입으로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변화는 시간이 걸리나 대단히 많습니다.
유엔이 창설된후 집단안보조치의 첫 행사가 한국전 참전이었습니다. 정전후에도 정전관리는 유엔사 테두리내에서 이행되고 있습니다. 남북한의 유엔가입으로 휴전체제가 평화체제로 바뀌는데 유엔의 역할이 보다 활성화,가시화될 가능성이 큽니다.
▲박=유엔가입후 평화정착을 위해 남북 기본관계를 만들 필요가 있고,그 뒤에 휴전협정체제 변경이나 대체문제를 남북 당사자간에 협의하는 것이 순서입니다.
▲정=남북의 유엔동시 가입은 주변국가의 관계에도 변화를 가져올 것입니다. 한중관계는 대단히 빠른 속도로 정상화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제 한중 정치관계 정상화 과정의 중요한 장애물이 제거된 것 같습니다. 중국이 보여주는 몇가지 신호들을 종합해 보면 한중관계정상화는 시일의 문제일뿐이란 생각이 듭니다.
물론 지나친 낙관은 속단이겠죠. 중국 중심으로 신사회주의권을 만들기 위해 북한의 유엔가입을 권고했다는 보도도 나오고,북한­중국사이에는 유엔동시가입만으로는 해결 못할 뿌리가 있으니까요.
그러나 유엔가입후에는 전보다 상당히 빠른 속도로 동맹,우방관계가 재조정되는 국면에 접어들 수 밖에 없습니다.
▲박=북한이 단일의석 가입주장을 포기하고 유엔가입 신청을 한 것은 장고의 결과,실리추구 태도를 표시한 것이라고 봅니다. 우선 북한은 유엔가입으로 현재 국제적으로 크게 손상된 이미지를 개선해 평화애호국이란 평가를 받을 수 있고,미·일·독 등 우리의 전통우방국과 수교도 가능하고,경제교류·과학기술 협력도 할 수 있습니다.
▲정=그렇습니다. 북한은 실리적,현실적 이익을 고려해 유엔에 가입한게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그것은 자발적 결정이라기보다 타의에 의해 마지못해 내린 결정입니다. 이점은 대남정책이 가까운 장래에 근본적으로 바뀌리란 전망을 어둡게 합니다.
우리 북방정책은 북한동맹권으로 침식하니 일본과 관계를 개선하는 등 남방정책을 취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죠.
▲박=유엔가입 초기에는 국내 사정으로 경직된 태도를 보이겠지만 북한도 국제현실 변화를 외면할 수 없고,실리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어 머지않아 대남 정책에 어느 정도 변화조짐이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죠.
▲정=결국 남북한 유엔동시가입은 북한외교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의미가 있습니다. 국제사회에 본격 진출함으로써 관행과 상식에 많은 제약을 받게되고 이제까지의 외교행태에 많은 변화를 요구받게 될겁니다. 여기에 성공적으로 적응할 것인지는 두고볼 과제입니다.
▲박=유엔테두리내에서의 대화와 협력이 축적돼 유엔테두리 안팎에서 대화가 계속되고,그것이 바탕이 돼 각종 남북교류가 이루어진다면 그러한 것이 한반도의 통일을 앞당기려는 우리 노력에 긍정적으로 기여하겠죠.
▲정=동시가입이후 남북 평화체제를 정착시키고,통일시대를 맞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사항을 염두에 둬야 합니다.
무엇보다 북한의 가입을 우리 외교의 승리라고 지나치게 강조해 모욕을 느끼게 해서는 안됩니다. 자축보다는 책임있는 근대국가로서의 과제실현에 공동노력해야 합니다.
다음으론 한민족이 자주적으로 주도권을 쥘 계기를 삼아야 합니다. 유엔가입으로 국제사회,주변국의 영향력이 증대하고 한반도 바깥에서 해결책이 제시될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이런 중요문제를 미국정책만 답습할 게 아니라 자신감을 갖고 자주적으로 대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또 남북대화를 지속,발전시키려는 노력을 성의있게 해야 합니다. 대북정책에 원칙을 지키는 것이 지금만큼 중요한 때가 없습니다. 이와 함께 북한 사정을 고려하는 포용성 있는 대북정책을 개발해 실질적 진전을 이뤄야 합니다. 기본합의서 채택등에서 선전적 측면에 매달릴 필요는 없습니다.
북한 연방제가 지난 몇달간 대단히 변화가능성을 보이고 있으므로 이름보다 내용을 보아 수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법·제도·이념 등 여러 분야에서 우리 스스로 호흡을 가다듬고 국내토양도 정비해야 합니다.
▲박=우리 외교영역은 이제 범세계적으로 질·양면에서 확대되게 됐습니다.
앞으로 유엔외교는 국익증진,남북관계발전,국제협력의 세가지 영역에서 국력에 상응한 기여를 해야합니다. 유엔 테두리내에서 군축,비핵화,평화유지군 지원,국제경제 협력 등 우리 나름대로 역할할 국제문제가 있습니다. 여기에 기여한 만큼 우리 외교도 꾸준히 성장할 겁니다.
이 과정에서 국민의 이해와 지지를 얻기위해 주요문제를 처리하는데 널리 국민의 의견,제의를 수렴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더욱이 군축·비핵화문제는 우리 우방과의 관계를 고려해야 하므로 정부시책을 펴나가는데 국민의 컨센서스를 구하는 노력,자세가 필요합니다.<정리=김진국기자><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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