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면마다 고대문명의 숨결가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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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늘 보던 주변풍경도 새롭게 느껴질 때가 있다. 낯선 이국풍물, 그것도 토속적인 삶의 잔때가 묻어 있는 것이라면 더욱 호기심을 자극한다.
해양 실크로드-. 바다에도 실크로드가 있다는 숨은 뜻인데 MBC-TV가 지난 2일부터 방송중인 9부작 다큐멘터리특집 『해양 실크로드』가 한여름밤 잠을 설치게 하고있다.
짙푸른 잉크를 풀어놓은 듯한 바다와 한가로이 노젓는 어부의 모습. 그런가하면 허물어진 그리스신전을 떠올리게 하는 고대 유적지등이 차례로 겹치며 매편 변신을 거듭했다. 영상미로는 그만이다.
이탈리아의 베네치아에서 일본의 오사카를 잇는 고대의 뱃길교역로를 따라 각 지역의 해상교역상 역할과 문화·역사·풍물등이 화면에 담겨져 물흐르듯 흘러갔다.
인간의 숨결이 닿지 않은 문명의 내면세계를 표출함으로써 시대를 껑충 건너 뛰어 단순한 뱃길묘사에 그치는 위험을 피해갔다.
영상의 아름다움 못잖게 다큐멘터리에 꼭 있어야 할 잔잔한 감홍이 군데군데에서 피어오른 것도 이때문이다.
「베니스상인」으로 대변되며 한때를 풍미했던 유서깊은 항구도시 베네치아. 발길이 끊이지 않는 관광객들로 북적거리는 현대적 풍경은 교역의 발자취를 찾지 못하는데서 오는 아쉬움을 갖게한다.
녹색융단을 방불케하는 스리랑카 차(茶) 농장에서 일하는 촌부들의 해맑은 표정과 손놀림은 정반대의 모습이다. 굽이친 산길을 굽어보며 산증턱에 빽빽이 들어찬 차농장은 옛것 그대로라 시공을 초월한 푸근함을 전해주었다.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아 교역에 혼신의 힘을 쏟았던 고대 뱃사람들의 후예가 간직한 민속과 풍물은 색다른 문화의 공감대였다.
터키풍의 포구, 그리스 민속춤, 아프리카와 인도를 왕래 하는 돛단배, 후추·유향의 지역특사물. 이 와중에 우리것과 흡사한 맷돌과 절구를 아라비아에서 사용한다는 사실은 신선한 볼거리였다.
바다를 배경으르 발그스름하게 저무는 저녁놀, 파랗게 채색된 구름 하나까지 놓치지 않고 보는 이에게 전달해준 제작진의 노력이 돋보였다.
방송시간대(오후11시이후)때문에 더 많은 사람이 볼수 없었음은 방송사의 우라 여겨져 안타까울 뿐이다.
그러나 바다의 실크로드가 가져다준 번영과 쇠퇴, 그리고 그 흔적을 차분히 다룬 이번 특집물은 빼어난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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