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7가] 한국 프로야구의 잃어버린 10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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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손 벌리기도 창피하고 궁색해. 다른 계열사 사장들도 거의 다 후배들인데 이거 원 …." 한국에서 제가 맡았던 프로야구단의 사장은 어느 해 겨울 이렇게 넋두리를 늘어놓았습니다. 그 분은 매일 선수들의 기록을 챙기고 훤히 꿰고 있는 '야구광' 이었고 어려운 구단 살림에 보태려 그나마 수입원을 찾으려 애를 쓰던 CEO였습니 다.

해마다 겨울이면 계열사를 돌며 동냥하듯 운영자금을 모으는데 망막함 을 호소했던 그 분이 갑작스레 떠오른 것은 바다 건너 한국 프로야구의 위기 탓입 니다.

한국 프로야구는 지금 현대의 해체로 이만저만 갈팡질팡하고 있는 게 아닌 모양입니다. 더욱 현대의 대체 구단으로 떠올랐던 농협과 미주 한인 기업 의 인수 작업이 잇따라 좌초되면서 '공황 상태'에 빠진 듯합니다.

1995년 500만 관중 돌파를 정점으로 빠른 속도로 성장의 성장을 거듭했던 프로야구는 몇 번 움찔하고 휘청거리더니 불과 10년만에 작금의 위기에 봉착하고 말았습니다. 전 국민 중 노약자와 영아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성인과 학생들이 한번쯤 야구장을 찾는 대호황을 누렸던 프로야구가 '잃어버린 10년'을 한탄하는 신세로 곤두박질친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자업자득입니다. 그 시절 서울 구단 단장의 망발이 맨 먼저 떠오릅니다. 이런 호황기에 광고나 홍보를 더 강화해 야 하는 것 아니냐는 건의에 "스포츠신문들이 누구 때문에 먹고 사는데?" 날아가 는 야구공에 새도 피해갔다는 당시의 위세가 보통이 아니습니다. 일부 선수들은 또 어땠습니까? 기자의 전화에 "거 1면 아니면 알아서 대충 쓰세요. 피곤해요 잘 게요."

야구단에 발령이 나면 '물먹은' 것으로 여기는 사장들의 아예 없는 '비즈니스 마인드'는 먹구름이 한번 끼자 프로 야구란 나무를 고사목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원 세상에 만성 적자에 남의 돈으로 꾸려가는 기업 주제에 무슨 자 유계약선수 제도의 도입이란 말입니까? 미국이 그랬습니까? 일본이 그랬습니까? 참 순진하기만 한 구단들의 본헤드 플레이가 프로야구의 채산성 악화를 더욱 재촉 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한국야구위원회(KBO)의 무능함은 이번 현 대 사태를 통해서 재확인됐습니다. 사무총장은 현대 문제의 해법으로써 '범 현대 가의 지원'에 기대한다는 게 제일성이었습니다. 아니 모기업도 북핵 실험으로 수 천억을 쏟아부은 대북사업이 휘청거리고 있는 판국에 구원의 손길을 뻗칠 수 있으 리라 진정 판단한 것인지 어처구니없는 현실 인식입니다.

눈덩이처럼 적 자가 쌓여가는 한국 프로야구가 기업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무이한 길은 그나 마 중계권료의 현실화인데 KBO는 몇 년 전 한 방송사와 독점 중계 계약으로 전기 를 마련하는가 싶더니 이후 감감 무소식입니다. 하긴 사상 첫 200승 투수가 탄생 한 기념비적 경기의 TV 채널도 확보하지 못한 마당에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마는.

한국 프로야구의 위기는 본질적으로 전두환 정권의 사생아로 태어나고 인 구 1억도 안되는 땅에서 언감생심인 프로 스포츠 산업의 태생적 한계에서 비롯됐 습니다.

하지만 또다시 '잃어버릴' 10년을 맞지 않으려면 지금이라도 전 종사자들의 뼈를 깎는 반성과 프로다운 인식의 전환이 선행돼야할 것입니다.

구자겸 USA 중앙 스포츠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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