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거짓말 브리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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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대변인인 조영동(趙永東)국정홍보처장의 부실한 브리핑이 위험 수위에 도달했다. 총리실 출입기자들조차 "믿을 수 없다"고 말할 정도다. 주요 정보를 빠뜨리거나 잘못 전하는 일이 잦기 때문이다.

몇가지 사례를 보자.

"국무회의에서 부안 사태와 관련된 논의는 없었나."

"특별한 것은 없었다. 안건이 아니기 때문에 대통령의 언급이 전부다."

25일 오후 1시30분 서울 세종로 정부 중앙청사 10층 브리핑룸. 趙처장은 이날 국무회의 결과를 기자들에게 설명하면서 특검제 거부건 외에는 별게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불과 30분 후 윤태영 청와대 대변인은 노무현(盧武鉉)대통령의 부안 사태 관련 발언을 자세히 소개했다. 盧대통령은 연내 주민투표 실시가 어렵다는 사실을 시사하고 "부안 주민들과 직접 만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러자 출입기자들 사이에선 "'별게 아니다'고 하더니 무슨 소리냐"는 불만이 터져나왔다.

이번뿐이 아니다. 호주제 폐지를 골자로 한 민법 개정안 통과가 유보된 지난 10월 22일 국무회의 브리핑 때도 趙처장은 "국무위원 간에 토론이 있었느냐"는 질문에 "시간이 없어 잠깐 논의했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이날 국무위원들은 민법에 가족의 개념을 포함시키는 문제를 놓고 1시간여 동안 열띤 토론을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9월 30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최낙정 당시 해양수산부 장관은 "대통령이 위기에 처했는데 국무위원들이 몸으로 막아야 하는 게 아니냐"는 내용의 원고를 낭독했다. 하지만 趙처장은 브리핑에서 이를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이런 식의 브리핑은 불리한 정보를 걸러내기 위한 수단이라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언론인 출신인 趙처장이 이를 모를 리 없다. 보다 진솔한 자세를 기대한다.

정철근 정책기획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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