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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파 규제 수출 항로에 새 걸림돌 수출업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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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전자파에 대한 규제가 전자·전기제품의 수출에 복병으로 등장했다.
EC(유럽공동체)통합과 북미자유무역지역 등 세계경제의 블록화움직임이 두드러지면서 선진국들이 전자파방해 규제를 크게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내업계는 몇몇 대기업을 빼고는 이같은 선진국들의 전자파규제에 뾰족한 대응책을 마련치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전자파방해란 전자제품 등 각종 기기에서 발생하는 전자파가 다른 제품의 동작에 장애를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예컨대 TV를 보면서 선풍기를 켰는데 TV화면이 일그러지는 등 사소한 것에서부터 공장내의 조그만 전자제품이 산업용로봇의 오동작을 유발, 인명피해를 주는 경우까지 다양하다.
특히 최근에는 컴퓨터보급이 늘어나면서 단말기의 전자파가·전원선을 통해 메인컴퓨터의 주기억장치에 치명적 손상을 입히는 경우마저 있다.
이처럼 전자파방해로 인한 피해가 잦아지자 선진국들이 전자파규제를 강화하면서 이를 수입규제를 위한 비관세장벽으로 이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지난해에야 체신부에서 전자파방해검정규칙을 만드는 등 대책이 미비하다.
불필요한 전자파를 발생시키는지의 여부를 실험할 수 있는 야외실험실과 전자파암실 등 관련실험시설을 갖추고있는 전자업체는 삼성전자·금성사가 고작이다.
현대전자와 대우전자까지도 최근에야 야외실험실만을 마련했을 정도이고 그밖의 다른 전자업체들은 비싼 돈을 들여 외국의 실험실을 이용해오고 있다.
중소전자업계 관계자는 『완벽한 실험시설을 갖추는데 20억원, 간이실험실정도를 마련하는데 만도 5억원이 든다』며 어려움을 호소했다.
이같은 비용부담 때문에 대부분의 업체들은 전자제품의 샘플을 해외로 들고 나가 실험을 한뒤 전자파가 규제치 이상으로 나오면 다시 설계를 하는 일을 반복해왔다.
더구나 미국의 경우 정기적인 사후점검을 통해 규제치를 넘으면, 그동안 미국 내에서 판매한 모든 제품을 회수해가도록 하고 있다.
국내기업은 아니지만 전자파규제로 도산한 기업도 있다.
3년전 대만의 아폴로전자는 미국의 사후관리시험에 불합격, 수천만달러에 이르는 수거비용을 감당 못해 회사 문을 닫았다.
더욱이 전자파방해규제는 지금까지 다른 제품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규제하던 방식(EMI)에서 외부의 전자파방해를 견뎌내는 능력(EMS) 이 있는가를 알아보는 쪽으로 바뀌고있다. 독일이 이미 그같은 방식을 택하고있고 미·캐나다·EC 전국가들이 채택움직임을 보이고있다.
국내에서도 전자파를 일부 흡수해주는 소재를 자체기술로 개발해내는 등 선진국의 전자파장벽을 이겨내기 위한 노력이 없지는 않다.
지난5월 중소전자업체인 보암산업은 상공부공업기반기술지원자금 4억원을 포함, 총9억원의 연구비를 투입해 전자파흡수필터를 개발해내기도 했다.
체신부도 뒤늦게나마 지난 6월 전자파내성(EMS) 시험시설을 갖췄는데 앞으로 국내업체들의 제품실험을 해줄 계획이다.
그러나 정부와 업계가 전자파규제에 대한 국제적인 움직임에 너무 무딘 것도 사실이다.
지난3월 스위스 취리히에서 열린 전자파규제국제회의에서는 92년말 통합을 앞둔 EC가 어느 정도의 전자파규제를 할 것인가를 놓고 미일대표들과 설전을 벌였으나 국내전자업계는 대부분 그같은 회의가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한국표준연구소의 정악삼박사는 『국내 전자업계는 이제 겨우 불필요한 전자파 발생을 줄이는 필터류를 일부 개발했을 뿐 전도성고분자차폐재 등의 기초소재개발은 엄두도 못 내고 있다』며 『각종 전자· 전기제품의 전파방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기술개발이 시급하다』 고 지적했다. <이연홍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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