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딛기 힘들어질 유럽 증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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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20세기 후미에 블록경제라는 괴물이 서성대고 있다. 그중 인구 3억2천만명, 국민총생산 4조달러의 EC(유럽공동체)라는 12두의 괴물이 미국과 일본에 빼앗긴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며 블록화를 부추기는 모습은 최근 유럽출장에서도 확인되었다.
EC통합은 물론 증권시장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증권시장의 통합작업은 현재 EC각료이사회가 채택한 분야별 지침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이 지침은 성내단일면허제와 본국감독·상호승인 등 세가지 원칙을 기본바탕에 깔고 각국간 상충되는 이해를 절충하는 과정에 있는데 전도는 그리 밝은 것 같지는 않았다.
우선 증시통합의 요체인 단일 증권거래소 설립과 정보교환시스템개발이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영국이나 독일 등이 자국의 이익확보를 위해 자국의 기존시스템을 EC전체의 시스템으로 확대하려 애쓰고있기 때문이다.
각국의 제도차이, 그 중에서도 세제상의 차이도 통합작업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예컨대 채권·예금의 이자소득에 대한 비과세로 각국 자금을 끌어들이고 있는 룩셈부르크 등은 이자소득에 대한과세 계획을 당연히 반대하고있다.
그러나 이같은 현실적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EC증시는 지금 역내국가간 결속을 다지고있는 것만은 분명하며 종국엔 회원국과 비회원국간의 차등을 심화시킬 것이다.
이 말은 결국 앞으로 한국증권업계의 EC진출은 더욱 어려워지고 이미 진출한 경우도 여러 가지 장애나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는 얘기가 된다.
뉴욕이나 동경에 비해 규제가 덜해 8개 국내증권사 해외영업점이 모두 런던에 개설됐지만 앞으로의 상황은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해외전환사채(CB) 등 국내기업이 발행하는 해외증권의 최대 소화처로 자리잡은 유럽증시가 EC통합의 결과에 따라 지금과는 다른 역할을 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우리업계는 지금 내년1월로 예정된 증시개방에 몰두, 이같은 EC증시의 흐름에 수동적인 대응만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구심을 떨쳐 버릴 수 없다.
다섯달 앞으로 다가온 자본시장 개방이 블록경제시대의 대외진출방안과 연계되어 추진될 수 있도록 정부와 업계가 함께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할 시점으로 여겨진다. 【이한규<증권거래소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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