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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캐피털리스트로 변신한 진대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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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이 다시 화제다. 이번에는 캐피털리스트로 변신했다. 이미 1호 투자가 이뤄졌다. 벤처캐피털 업계는 ‘실리콘밸리 방식’이라는 ‘진대제 펀드’에 주목하고 있다.

이 펀드로부터 400만 달러를 투자받은 류중희 올라웍스 대표는 “기존 국내 창투사와는 완전히 다르다고 보면 된다”고 밝혔다. “기대 이상의 도움을 받고 있다”고도 했다.

벤처캐피털 아닌 사모펀드

무엇이 다르다는 것일까? 류 대표는 진대제 전 장관이 이끄는 ‘스카이레이크 인큐베스트’에 대해 “한마디로 스마트 머니(Smart Money)”라고 설명했다.

스카이레이크는 벤처캐피털이 아니다. 사모펀드(PEF)다. 하지만 운영 방식은 벤처캐피털에 가깝다. 스카이레이크 측도 “미국 KPCB 모델과 거의 같다고 보면 된다”고 말한다. KPCB(클라이너 퍼킨스 코필드 & 바이어스)는 구글, 넷스케이프 등에 투자해 큰 이익을 거둔 실리콘밸리의 대표적인 벤처캐피털이다.

스카이레이크의 투자 방식은 ‘인큐베스트를 한다는 것’이다. 인큐베스트는 육성(Incubate)과 투자(Invest)의 조합어다. 물론 국내 벤처캐피털(VC)들이 인큐베이팅 기능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소극적인 경영 간섭’ 정도로 비춰진 것이 사실이다.

스카이레이크는 ‘적극적인 경영 개입’을 강조한다. 진대제 대표는 “스카이의 접근 방식은 기존 국내 창투사와 다른 방향”이라며 “실리콘밸리형 투자로 글로벌 스탠더드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이 회사의 최승우 부사장 역시 “투자만 하고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임원 파견은 물론 경영에 실제 도움을 주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스카이레이크는 1호 투자회사로 선택한 올라웍스에 CFO와 일본법인 CEO, 미국법인 CEO 등 3명의 임원을 파견했다. 올라웍스는 설립된 지 1년밖에 안 된 ‘시리즈A 기업’이다.

스카이레이크와 공동 투자한 인텔캐피탈의 한정수 상무는 “투자사가 경영에 직접 참여해 비즈니스 플랜을 함께 세우는 방식은 국내 일반 창투사에서는 보기 힘들다”며 투자 배경을 설명했다. 스카이레이크와 인텔캐피탈은 각각 199만 달러씩 투자했다.

진대제 대표는 “투자 후 모니터링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재무·회계는 물론 사업제휴까지 직접 나선다”고 말했다. 그는 “야후 등 미국 유명 서비스 벤처들이 성공할 수 있었던 까닭은 처음부터 벤처캐피털들이 사업구상에 적극 참여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영업실적이 전혀 없는 올라웍스가 야후와 포괄적 제휴를 맺은 것도 스카이레이크가 주선했기 때문이다. 최승우 부사장은 이와 관련, “올라웍스의 얼굴 인식 기술과 서비스 모델이 외국 업체에 비해 앞서 있기 때문에 해외전략이나 마케팅, 지역별 네트워크 협상 등 비기술적인 부문을 집중적으로 지원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그렇다고 ‘향후 몇 년 안에 기업공개를 한다거나, 매출 목표를 정하고 실패할 경우 투자비를 회수한다’는 식의 옵션도 없다는 것이 양측의 얘기다.

법무법인 투자는 이번이 처음

미국의 유명 로펌이 참여한 것도 특색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위치한 ‘윌슨 손시니 굿리치 로자티(WSGR)’는 2만 달러를 투자했다. WSGR은 구글 등에 직접 지분투자를 해온 세계적인 법무법인이다. 최승우 부사장은 “향후 미국 진출을 위해 WSGR을 참여시켰다”고 설명했다.

류중희 올라웍스 대표 역시 “법무 비용(Regal pee) 대신 소량의 지분투자를 하는 것이 실리콘밸리 방식”이라고 말했다. WSGR의 국내 투자는 이번이 처음이다.

‘맨 파워’ 역시 눈길을 끈다. 스카이레이크에는 진대제 대표를 포함해 모건스탠리 출신의 최승우 부사장, 삼성전자 출신이면서 인텔R&D 연구소장을 지낸 이강일 부사장, 삼성전자 전무 출신인 박승일 부사장 등이 참여했다. 진대제 대표는 “기술경영을 해봤고, 투자를 해 본 전문가들이 모였다”고 설명했다.

한정수 인텔캐피탈 상무는 “스카이레이크의 인큐베이팅 능력과 인적 구성이 투자의 가장 큰 요인이 됐다”고 할 정도다. 진 대표는 “장관 시절 150개국 정통부 장·차관을 만났다”며 “이 정도면 글로벌 네트워크에 자신을 가질 만하지 않은가”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나를 포함해 스카이레이크 인력의 네트워크를 동원해 올라웍스가 15~16개 해외기업과 제휴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며 “향후 투자하는 기업에 대해서도 이 같은 우리의 역할을 통해 투자한 회사의 성장을 도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진대제 대표는 어떤 방식의 투자 회수를 생각하고 있을까. 일부에서는 스카이레이크를 ‘바이아웃(Buyout) 펀드’로 보는 견해도 있다. 바이아웃 펀드는 회사를 인수해 가치를 올린 뒤 되파는 투자 방식이다.

이에 대해 스카이레이크 측은 “국내 창투사처럼 기업공개(IPO)에 집중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외 대기업에 의한 인수합병(M&A) 등 다양한 방식의 회수를 고려하겠다”는 것이다.

성장확률 높은 신생기업에 투자

다음 투자처에 대한 관심도 높다. 진대제 펀드의 1호 투자처는 ‘웹 2.0 비즈니스’를 표방하는 회사다. 때문에 향후 투자 역시 인터넷 기업이 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많다. 이에 대해 진 대표는 “두 번째, 세 번째 투자회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며 “이 회사들의 공통점은 인큐베스트”라고 말했다.

비즈니스 분야는 가리지 않되, 성장 확률이 높은 신생 기업에 투자하겠다는 뜻이다. 진 대표는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회사)에도 관심이 있다”고 말했다.

벤처캐피털 투자기법의 大변화

‘상장’보단 ‘M&A’를 더 많이 노려

국내 벤처캐피털은 ‘초기 단계 기업’에 투자비중이 상당히 높다. 벤처캐피털협회가 발간한 『2006 벤처캐피털 연감』에 따르면 지난해 ‘창업 3년 이내의 초기 단계 기업에 대한 창투사들의 투자비중’은 30.7%에 이른다. 반면 미국의 경우 약 17%대다.

국내 벤처캐피털은 높은 위험성을 갖고 장기간 투자해야 하는 부담을 갖고 있다. 하지만 투자기업이 기업공개에 성공하면 대박을 노릴 수 있다는 점, 초기 단계에 투자할 경우 싼 가격으로 지분을 매입할 수 있다는 점 등을 이유로 초기 투자에 집중해 왔다. 벤처 버블 당시에는 신생기업 투자비율이 60%에 이르기도 했다.

투자 이후에 경영까지 참여하는 사례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2005년 창투사의 경영참여 투자가 허용되면서, 지난해부터 경영참여 목적의 투자조합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

지난해 LG벤처투자는 반도체 신생 기업의 지분 50% 이상을 취득하면서 경영권을 확보하기도 했다. 투자와 경영의 조합이 벤처캐피털 업계의 새로운 트렌드로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기업공개를 투자의 최대 목적으로 삼았던 인식도 바뀌고 있다. 특히 상장 후 주가가 공모가를 밑도는 기업이 늘어나면서 ‘상장은 곧 대박’이라는 공식도 깨지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상반기 코스닥시장 새내기 19개 종목 중 18개 종목의 주가가 공모가 밑이었다. 때문에 최근에는 기업공개보다는 기업가치를 올려 M&A를 통해 수익을 회수하는 실리콘밸리식 투자가 주목받고 있다.

이에 대해 진대제 대표는 “IPO(기업공개)를 해야 성공이고, M&A는 실패한 것이라는 벤처업계의 인식은 잘못된 것“이라며 “벤처기업 경영자들이 초기 단계부터 벤처캐피털의 투자를 유치해 IPO, M&A 등 다양한 형태로 회사의 성장을 모색할 수 있도록 인식을 바꾸고, 벤처캐피털 역시 단순한 자금지원 외에 투자기업의 성장을 돕는 일에 더 힘을 쏟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태윤 기자 pin21@joongang. co. 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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