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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자회담 앞두고 한국 온 힐 차관보 … 북과 중유 제공 협의 가능성 시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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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천영우 한국 측 6자회담 수석대표(右)와 크리스토퍼 힐 미국 수석대표가 4일 서울 명동 롯데호텔에서 만찬 회동을 가진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최승식 기자]

북핵 해결을 위한 6자회담 재개가 사흘 앞으로 다가오면서 북한의 요구사항과 한국.미국 등 관련국의 대응 전략이 드러나고 있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4일 최근 북한을 다녀온 미국 전직 관리의 말을 인용, 북한이 핵 폐기 초기 조치에 대한 대가로 ▶경수로 제공 전까지 연간 50만t의 중유 또는 그에 상응하는 전력 제공▶테러 지원국 지정 등 미국의 모든 대북 제재조치의 해제를 요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조엘 위트 전 미 국무부 북한 담당관은 "김계관 외무성 부상이 영변 핵 관련 시설을 동결하고 IAEA 사찰관의 복귀와 감시 카메라 재가동을 허용할 용의가 있다고 밝히며 이같은 조건을 제시했다"고 말했다. 위트 전 담당관은 지난달 30일부터 닷새간 북한에 머문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 NHK 방송도 이날 베를린 북.미 6자회담 수석대표 회동(지난달 16~18일)에서 김계관 부상이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에게 난방용 연료가 부족하다는 점을 강조한 뒤 에너지 지원을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힐 차관보는 4일 "중유 제공에 대해 북한과 논의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그는 그러나 "9.19 공동성명에 대북 에너지.경제 지원 관련 항목이 있다"며 6자회담에서의 협의 가능성을 암시했다. 3일 방한한 힐 차관보는 이날 천영우 한국 6자회담 수석대표와 회담 전략을 협의했다.

하지만 대북 경수로 건설 재개 문제는 절충점을 찾기 힘들 전망이다. 우리 외교부의 한 당국자는 "북한이 핵실험을 했기 때문에 국제법에 따라 평화적인 핵 이용 권한이 없고 다른 나라도 원자로 건설을 지원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완전한 핵 폐기 때까지 어떠한 형태의 원자로 제공도 불가능하다"고 선을 그었다. 북한의 경수로 제공 요구를 미리 차단하기 위한 한.미의 가이드 라인으로 해석할 수 있다.

앞서 힐 차관보는 3일 입국 시 인천국제공항에서 "미국 정부의 정책은 대통령이 제시한다"고 말했다. 그는 "국무부와 재무부는 대통령의 정책을 이행할 뿐"이라고 덧붙였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 은행의 북한 계좌 동결 문제에 모종의 해법을 제시했고, 재무부도 이에 따르고 있다는 의미다. 미 재무부는 국무부와 달리 BDA 문제에 강경 입장을 보여왔으나 최근 태도가 상당히 누그러졌다.

힐 차관보는 또 "(8일 베이징에서 시작될) 6자회담에서 진전을 이룰 '토대'가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고 했다. 베를린 회동에서 북한이 핵 폐기 초기조치 이행에 합의할 뜻이 있음을 확인했다는 얘기다. 힐 차관보는 그러나 "북한은 국제 금융계에서 나쁜 평가를 받는 몇 가지 관행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따라서 BDA 해결 과정에서 위조지폐 유통과 돈세탁 처리 문제가 여전히 남아있고, 미국이 이를 6자회담 협상에서 북한을 움직이는 '지렛대'로 사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글=이상언·정용환 기자<joonny@joongang.co.kr>
사진=최승식 기자 <choissi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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