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자금동원능력이 곧 영향력/계보운영(정치와 돈:61)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정발연 장래도 「돈줄」확보에 달려(주간연재)
우리의 정치사를 「정치와 돈」의 시각에서 관찰할때 『정치는 명분을 밑천으로 돈을 벌어들이는 행위』로 파악하는 사람도 있다.
국리민복이나 나라의 민주화를 위해 헌신하는 정치가들도 적지않을 것이다. 그러나 수십년간 정치생활을 하다보면 정치를 잘하기 위해 돈이 필요한건지,돈을 벌기 위해 정치를 하는건지 모호해지는 사례도 정치인들은 자주 접한다고 고백한다.
실제 정치에서 정치력의 한 중요한 척도가 자금능력이라는 점에 이의를 다는 사람은 별로 없다.
보스의 영향력이 큰 우리의 「정치시장」에서 돈의 흐름은 계보를 통해 들어가고 계보를 통해 분배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80년대는 야당에서 동교동계(김대중),상도동계(김영삼)가 유명했고 13대 초반 4당시절에는 계보가 평민·민주·공화당의 1인정당형태로 나타났으며 지난해 3당합당이후엔 오히려 여당의 계보활동이 활발하다.
제1야당인 신민당은 지난 2일 정치발전연구회(정발연)가 계보선언을 하기까지 김대중총재의 단일계보라고 할 수 있었다.
김총재는 카리스마적 지도력과 공천권을 행사할 수 있는 「총재」라는 우월적 지위를 십분 활용,70명 가까운 소속 국회의원을 지배할 수 있었다. 물론 김총재가 재가하지 않은 정치자금의 거래도 있었겠지만 그 규모는 미미했다고 보면 틀림없다.
시·도의원선거 패배후 야권통합과 당내개혁을 명분으로 정발연이 탄생했지만 그들이 독자적인 정치자금창구를 확보하지 않으면 제대로 된 정치계보로 발전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정발연이 발족되면서 바로 『정치자금 균점과 공천권 일부할양을 김총재에게 요구해야 한다』는 내부토론이 있었던 것은 바로 이같은 분석을 뒷받침 한다.
말하자면 야권통합·당내개혁이라는 명분은 정치자금·공천권이라는 실리와 표리관계를 이루는 것이다.
김총재가 정발연을 연구서클로만 인정하겠다는 굳은 의지를 계속 천명하는 것도 명분문제와 함께 독점적인 자금·공천관리권을 잠식당할 수 없다는 측면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도 있다.
계보발생의 초기단계에 있는 정발연은 아직까지 회원 모두가 십시일반으로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
현재 공개회원인 14명중 현역의원 9명은 30만원이상,원외위원장급 5명은 10만원 이상의 월회비를 내 계보를 꾸려간다는 것이다.
서울 마포구 용강동 39평짜리 사무실은 보증금 2천만원에 월세 1백만원으로 빌렸고 상근직원 3명의 인건비와 기타잡비가 약 4백만원이 나간다고 한다.
보증금의 상당부분과 월 운영비의 적자분은 상대적으로 재정여유가 있는 노승환의원(회장)과 조윤형 국회부의장·정대철의원이 메운다. 이형배 의원과 한영수 전의원도 상당한 기여를 하고 있다는 얘기다.
정발연이 공개하지 않은 회원은 이외에도 원외위원장 20여명과 중앙당 국장급을 포함,50명이 넘는다는데 김총재가 사고당부 고시시한을 당초 7월말에서 8월말로 늦추는 바람에 명단공개도 함께 연기되고 있다.
공천과 직결되는 지구당위원장 자리만큼은 우선 확보해 놓고 정발연활동을 하겠다는 속셈들이다.
노의원은 『정발연은 당내 민주화투쟁이 목적인만큼 보스가 계보원관리를 위해 돈을 쓰는 것같은 행태는 없을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당조직강화특위 7명중 최소한 2명은 정발연측이 참여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노의원은 당공식기구인 야권통합추진위원에 정발연측이 처음 3명밖에 배정받지 못했으나 5명으로 늘려줄 것을 강력히 요청,관철시킨 것이 조직강화특위위원의 할당몫을 늘리기 위한 포석이었음을 숨기지 않았다. 이는 조직강화특위의 할당몫만큼 공천권 일부를 할애받을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있는 것이다. 공천권이 돈과 연결돼 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결국 「실리」의 관점에서만 보면 정발연의 정치계보로서의 가능성은 공천권=정치자금줄 확보에 달려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추석이나 연말,지구당 개편대회때 등에 제공하는 계보관리비는 계보원 장악을 위해서는 필수불가결한 자원인데 정발연을 공격하는 주류측에서는 계보관리비조로 『구야중진 모씨가 1억원을 지원해 줬다』는 소문을 흘리기도 했으나 정발연측은 『가당치도 않은 모략』이라고 일축.
신민당의 또다른 그룹인 「평화통일민주연구회」(평민연·이사장 문동환의원)는 「돈정치」에 익숙지않은 재야입장파인데다 스스로 당개혁을 위한 「연구모임」으로 위상을 한정시켜 김총재의 총애(?)를 받는 편이다.
이들이 지난 23일 토론회를 통해 ▲통합야당의 대표경선 ▲측근정치불식등 정발연 주장과 크게 다르지 않은 요구를 했음에도 김총재측에서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은 것도 평민연의 「순수성」때문이다. 평민연은 공천권과 정치자금줄에 대한 관심이 없어 김총재로서는 「순한 양」같은 그룹이다.
김총재는 1년에 한번씩 있는 총회때나 평민연사람들을 개인적으로 부를때 격려금조로 얼마씩 보태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평민연도 현역의원 10여명을 포함,약 1백명의 회원이 30만원(의원) 2만∼10만(평회원·원외위원장)의 월회비를 거둬 사무실운영·자체행사비 등에 충당하고 있다. 그러나 돈과 정치력으로 뒷받침되지 않은 평민연활동의 성과에 회의적인 평가가 많은 것도 사실.
지난 4월 합류한 재야의 「신민주연합」그룹도 월1회씩 모임을 갖기로 했으나 워낙 다양한 경력가들의 집합이라 동질성을 찾기 어려워 계보로 보기 힘들다. 그들은 모임을 가질때 회비 2만원씩을 꼬박꼬박 낸다는 것이다.
평민연수준의 「연구계보」만 하더라도 보통 밥값은 리더가 내지만 신민주연합그룹은 철저한 더치페이(제몫 내기)원칙을 견지하고 있다.<전영기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