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책갈피] 혁명가의 숨결 서린 중국 근대사의 현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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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풍경
천광중 지음, 박지민 옮김, 현암사
304쪽, 1만2000원

시간은 흐른다. 누구에게나 어디에서나. 그러나 예외도 있다. 역사의 공간에선 시간이 쌓인다. 역사 속 현장은 과거의 그들과 오늘의 우리를 만나게 하는 통로다. 그 곳에 가면 단절된 시간을 이어붙이는 실마리가 있다. 그 실마리를 따라 이야기를 풀면 현실의 정물은 살아 숨쉬는 역사 속 풍경이 된다.

베이징의 문화와 역사에 대한 글을 써왔던 작가 천광중(陳光中)은 중국 근대사를 수놓은 선각자들의 삶의 터전을 찾았다. 그리고 역사의 한 페이지를 반추하는 역사.문화 에세이를 펴냈다. 선각자들은 이 책에 등장하는 골목과 쇠락한 가옥에서 혁명을 꿈꾸고 시대의 어둠을 밝히는 문학 작품을 써냈다. 지은이는 100년 전 격동의 시기 그 공간을 무대로 역사의 한 자락을 살다간 주인공들의 인생과 내면을 탐색한다. 시대의 여명을 일깨우려 고군분투했던 작가 루쉰이 밤을 새워가며 소설을 썼던 샤오싱 회관. 그 속의 작은 방에선 침침한 등잔 아래 고뇌하던 그의 격정이 느껴진다. 회관은 지방에서 상경한 동향인들이 집단으로 거주하던 가옥이다.

또 캉유웨이.량치차오가 혁명의 꿈을 키워가던 난하이 회관의 조락한 마당에 서면 이들의 꿈과 좌절의 반전 드라마가 살아난다. 이 곳은 무술변법이 100일 천하로 끝나고 혁명 세력의 탈출 러시가 이어질 때 실낱같은 혁명의 가능성을 붙잡고 진로를 고민하던 두 사람의 아지트였다. 권력 탈취에 성공한 서태후 세력이 이들을 검거하기 위해 이 집을 급습했다.

피비린내 나는 국.공 내전과 문화대혁명의 풍파 속에서도 잘 보존돼온 고택들은 개발 열풍에 쓸려 주변 골목이 철거되면 덩그러니 홀로 남게 된다. 자금성.만리장성만 보고 올 게 아니라 더 늦기 전에 중국 문화의 속살인 골목길도 답사해봄직하다.

정용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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