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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책읽기] 수단 불문 이기는 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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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전쟁의 기술

원제 The 33 Strategies of War
로버트 그린 지음,
안진환·이수경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640쪽, 2만5000원

일은 남을 시키고 명예는 당신이 차지하라, 친구는 너무 믿지 말고 적은 이용하라…. 이런 말에 선뜻 동의하기가 웬지 껄끄럽다면 이 책은 아예 읽지 말 일이다. 반면 인생은 총탄이 빗발치는 전쟁터이고 인간 관계의 본질은 갈등이며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될 수 있다는데 십분 공감한다면 이 책은 더할 나위 없는 참고서가 될지 모른다.

지은이 로버트 그린은'유혹의 기술'(2002년, 이마고)과 '권력을 경영하는 48법칙'(2003년, 까치)등 두 권의 베스트셀러에서 이미 특유의 마키아벨리적 시각을 한껏 과시한 바 있다. 600쪽이 넘는'전쟁의 기술'은 두 권의 개정증보판 같은 느낌이다. 손자(孫子)의 '손자병법'이나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을 비롯해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미야모토 무사시의 '오륜서'등 동서양의 고전과, 나폴레옹.한니발.칭기즈칸 등 역사상 위대한 전략가.정치가.장수로부터 얻는 인생과 비즈니스에 대한 조언이 가득하다. UC 버클리와 위스콘신대 고전학 전공자답게 동서고금을 종횡으로 누비며 풍부한 사례를 끌어온 덕에, 이 책은 단순한 처세서 이상의 읽을 거리로도 꽤 훌륭하다.

책은 자기준비의 기술로 시작해 조직.방어.공격의 기술을 지나 심지어 모략의 기술까지 집중적으로 코치한다. 적이 누구인지를 명확히 하라 부터 싸우지 말아야 할 때를 파악하라, 아프고 약한 부위를 집중 공격하라, 사실과 거짓을 섞은 정보를 유포하라 까지 33가지의 전략과 세부 전술을 상술했다. 무엇보다 통념을 뛰어넘는 조언들이 흥미롭다. 가령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에게서 지은이는 "남들의 호감을 사야 한다는 유혹에 빠지지 말고, 존경받거나 심지어 두려워하는 대상이 돼라"는 교훈을 끌어낸다.

대처는 보수당 온건파의 반대를 무시하고 예산 삭감과 포클랜드 전쟁 등을 밀어붙였다. 영국 국민은 이로써 완고하고 고집 센 여인인 줄로만 알았던 대처에게서 단호하고 강력한 지도자의 이미지를 느끼게 된다. 결국 대처는 두 번의 선거에서 노동당에 압승을 거둔다. 수많은 처세서가 타인과 가급적 원만하게 지내라 타이르건만 "반목 없이는 전투도 없고, 전투가 없으면 승리할 기회도 없다. 승리를 거둘 때 얻는 인기가 오래가는 법"이라는 게 지은이의 주장이다.

남과 다르게 행동하면 사회적으로 대가를 치를 가능성이 높다는 고정관념도 여기서는 타파해야 할 대상이다. "맹목적 순응에 대한 대가는 그보다 훨씬 더 크기 때문"이다. 권투선수 무하마드 알리가 대표적인 경우. 알리는 권투를 시작한 열두 살 때부터 규칙을 경멸했으며 일반적 방식으로 싸우는 것을 싫어했다. 머리와 상체 앞으로 글러브를 올리는 대신 손을 낮게 내리고, 발 끝으로 서서 춤추듯 끊임없이 움직였다. 1964년 헤비급 챔피언 소니 리스턴과의 시합과 65년 재시합은 이같은 알리의 '비전통적'기술이 가장 크게 빛을 발한 경우다.

승리에는 뭔가 '마법의 공식'이 있을 거라 생각하는 사람들은 미야모토 무사시의 무용담에 귀를 기울여보자. 무사시에게 아버지와 동생을 잃은 마타시치로라는 청년이 결투를 신청한다. 무사시는 늘 결투에 늦던 평소와 달리 일찍 결투 장소에 도착해 숨어 있는다. 마타시치로 일행은 "무사시가 또 늦는다"며 방심하고 있다가 갑자기 나타나 칼을 휘두른 무사시에게 몰살당한다. 그러나 무사시는 유명한 사무라이 고지로와 싸울 때는 두 시간이나 늦게 등장한다. 그것도 배에 한가롭게 누워 꾸벅꾸벅 졸면서. 약이 오른 고지로는 이성을 잃고 날뛰다 무사시가 휘두른 목검 한 방에 즉사한다. "적과 상황에 따라 적절히 전략을 바꿔라. 책이니 기교니 공식이니 하는 화려한 무기 같은 주물(呪物)들은 내다버리고, 스스로 전략가가 되는 법을 익혀라."

한꺼번에 읽지 말고 천천히 항목별로 찾아보는 것이 더 적합할 듯한 책이다. 책에 인용된 쇼펜하우어의 말마따나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갑옷'이나 '무기'가 필요한 순간이 닥칠 때마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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