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ld에세이] '코드 인사'탓에 스캔들 줄이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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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범 4개월을 갓 넘긴 일본의 아베 신조(安倍晋三) 내각이 휘청거리고 있다. 내각 지지율은 30%대로 떨어졌다. 아베 총리가 취임 전까지 누렸던 국민적 인기는 아득히 먼 옛날 이야기처럼 들린다.

인기 폭락의 주범은 각료.고위 공직자의 잇따른 스캔들이다. 첫 테이프는 지난 연말 혼마 마사아키(本間正明) 세제조사회장이 끊었다. 공무원 관사에 입주하면서 부인과 함께 살 것이라고 신청서에 기재한 것과 달리 내연의 관계에 있는 여성과 동거해온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여태껏 관료를 임명하던 자리에 '개혁'을 내세우며 교수 출신인 혼마를 발탁했던 아베 총리로선 뼈아픈 스캔들이었다. 일주일 뒤에는 사타 겐이치로(佐田玄一郞) 행정개혁상이 정치자금 문제로 사임했다.

그 뒤에도 마쓰오카 도시카쓰 농림수산상, 이부키 분메이 문부과학상의 금전 관련 문제가 불거져 연일 언론의 질타를 받고 있다. 그런 가운데 가임(可妊) 여성을 '애 낳는 기계'로 비유한 야나기사와 하쿠오 후생노동상의 실언이 터져나와 여론을 들쑤셔 놓았다. 정계 관측통들 사이에선 "한 건만 더 각료 스캔들이 터지면 그걸로 아베 내각은 끝장"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문제는 지난해 9월 말 아베 총리가 새 내각을 짤 때부터 불씨가 잠복해 있었다는 점이다. 내각 명단이 발표되던 순간 많은 사람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예상 밖의 인물을 대거 기용한 조각에 대해 참신한 발탁이란 평보다는 "철저한 논공행상 인사"란 비판이 훨씬 많았다. 검증된 능력과 경험.경륜을 우선하기보다는 '아베 총리 만들기'에 일조한 사람들을 중용한 측면이 두드러져 보였기 때문이다. 특히 아베 총리와 이념성향이 비슷한 소장파 그룹이 요직을 꿰찼다. 언론에서는 "과연 이런 면면의 내각으로 국정이 잘 굴러갈 수 있을까" 하는 우려까지 나왔다. 갓 취임한 총리가 처음 짠 내각을 비판하는 것은 일본 정치에선 그리 흔치 않은 일이다.

우려는 취임 3개월째부터 현실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일이 이렇게 되고 보니 아베 총리가 조각 당시 논공행상에 치중한 나머지 인물검증에 소홀했다는 비판을 반박하기가 힘들어졌다. 서울 주재 특파원을 지낸 한 일본 언론의 기자는 "일본판 코드인사가 낳은 귀결"이라며 어디선가 많이 듣던 용어로 작금의 사태를 해설했다.

예영준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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