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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체류 외국인도 노조 결성할 수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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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서울고법 특별11부는 1일 불법 체류자도 국내에서 노동조합을 결성할 수 있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불법 체류자가 포함된 국내 최초의 외국인 노동조합인 '서울.경기.인천 이주노동자 노동조합'이 서울지방노동청을 상대로 낸 '노조 설립 신고서 반려 처분 취소 소송'에서다. 재판장은 김수형(51.사법시험 20회) 부장판사였고 주심은 이헌숙(38.여.사시 34회) 판사였다.

지난해 1심 재판부는 "불법 체류 외국인은 출입국관리법상 취업이 금지돼 있어 적법한 근로관계를 전제로 근로조건의 유지.개선 등을 위한 단체를 결성할 법적 지위에 있지 않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외국인 노동자 91명으로 결성된 이 노조에는 불법 체류 외국인이 다수 포함돼 있어 불법 체류 외국인의 지위를 둘러싼 논란이 예상된다.

판결 뒤 김 부장판사는 "법리적인 검토만 했을 뿐 불법 체류자들에게 온정을 베푼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불법 체류와 노조 결성은 별개"=재판부는 이날 판결문에서 "불법 체류 외국인이라도 현실적으로 근로를 제공하면 노조를 설립할 수 있는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이는 외국인의 지위를 보장한 헌법(제6조), 국적에 따른 근로조건의 차별을 금지한 근로기준법(제5조)에 근거했다고 재판부는 설명했다.

이어 "출입국관리법은 불법 체류자의 고용을 금지하고 있다"며 "하지만 사실상 근로를 제공하는 불법 체류자가 근로자단체를 결성하는 것까지 금지하는 규정으로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1심 재판부는 출입국관리법상 불법 체류자의 고용이 금지된 상태에서 이들의 노조 결성은 당연히 불법으로 봤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불법 체류 문제와 노조 결성 문제는 별개의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프랑스 연수를 다녀온 이헌숙 판사는 "프랑스는 박애 정신을 중시하는 나라이다보니 이주노동자들에게 관용적인 것 같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개인적인 연수 경험이 판결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고 강조했다. 이 판사는 "우리 판례도 이미 불법 체류자에 대한 산업재해를 인정하고 있다"며 "이번 사건에서 서울지방노동청은 이주노동자 노조 측에 조합원 명부를 내라고 했는데 이에 대한 법적 근거도 없다"고 말했다.

박성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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