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유전자 증폭 감식법」 국내 개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6면

오대양 사건 암매장 희생자들의 신원 확인 등이 수사상 새로운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가운데 현재 최첨단 과학 수사법으로·알려진 「유전자 지문 감식법」보다 더 진보된 「유전자 증폭 감식법」이 국내에서도 개발돼 활기차게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학계에서는 보통 「이중 PCR법」이라 불리는 이 유전자형 판별법은 백혈구 항원이 사람마다 각각 다르다는 점에 착안, 고안됐다.
백혈구 항원은 적헐구를 제외한 인체의 모든 세포 표면 위에 존재하는 단백질로 사람의 유전자에는 이 단백질을 만들도록 하는 암호가 수록돼 있다.
최근 PCR법을 국내에 도입, 모발·정자 등을 이용해 개인 식별 작업을 벌이고 있는 가톨릭 의대 한훈 교수 (미생물학)는 『지금까지 개발된 어떤 유전자형 판별법 보다 소량의 시료를 사용, 비교적 빠른 시간 안에 시험을 완료할 수 있는 것이 이 방법의 장점』이라고 소개했다.
이중 PCR법은 특정 유전자의 특정 부위를 두번에 걸쳐 인위적으로 합성해낸다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모발·혈액·정자 등 아주 소량의 시료라도 염색체만 제대로 보존돼 있으면 검사를 할 수 있다.
유전자 증폭 감식법은 유전자 지문 감식법과는 달리 이미 유전자의 서열을 파악한 상태에서 시험에 들어가기 때문에 유전자 지문 감식법으로 1∼2주일 걸리던 감식 기간을 1∼2일로 단축시킬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즉, 백혈구 항원을 만들도록 하는 유전자의 암호에는 사람마다 공통적인 부분과 서로 다른 부분이 공존하는데 우선 공통적인 부분을 1차적으로 증폭 (합성)시키고 뒤이어 2차적으로 서로 다른 부분을 증폭시켜 1차와 2차의 결과를 종합해 피검자가 어떤 유전형을 보이는지 판별하는 것이다.
이같은 PCR 감식법을 통해 서로 다른 두 사람이 같은 결과가 나올 확률은 이론상 수천만분의 1이하로 사실상 사람들은 서로 다른 고유의 백혈구 항원 유전자를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한 교수는 『유전자 증폭 감식법은 강도·강간 등 범죄에서의 범인 확인을 비롯해 친자 식별 등의 법의학 영역뿐 아니라 의학적 차원에서도 대단히 높은 이용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장기 이식과 자가 면역성 질환에 유전자 증폭법을 적용하면 이식시 거부 반응을 최소화 할 수 있고, 류머티스관절염 등의 원인 규명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이는 백혈구 항원을 만들도록 하는 암호를 지닌 유전자가 바로 인체의 거부 반응 등을 주도하는 염색체 부위와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PCR법을 이용한 백혈구 항원 유전자의 증폭은 인류고고학 등의 문화 과학계에까지 응용이 가능, 민족의 이동 상황을 추적해낼 수 있다.
한 교수는 『민족마다 백혈구 항원 유전자가 제각기 다른 특성이 있는데 지난해에 열린 국제학회 등에서 우리 민족은 중국 북부 지역에서 이동을 시작, 일본으로 옮겨간 것으로 밝혀졌다』고 말했다.
그러나 PCR법은 이같이 다양한 쓰임새에도 불구, 과학 수사 관련 기관이나 의학계의 적극적인 관심이 없어 완전 실용화를 위한 자료 축척에 매우 애를 먹고 있다.
현재 PCR법은 가톨릭 의대의 한훈 교수 팀 (유문간·김태규)과 서울대 의대의 이정빈 교수 팀, 인하대 의대의 임병욱 교수 팀 정도가 연구에 매진할 뿐 기타 관련 기관들은 투자 없이 「연구의 과실」만 노리고 있다는 비난을 듣고 있다.
한 교수는 『질환 탐색, 장기 및 골수 이식, 친자 확인 등에 대비한 「백혈구 항원 은행」의 설립에 관련 단체의 지원이 아쉬운 실정』이라고 말했다. <김창엽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