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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검 거부 충돌] 한나라 "이젠 식물국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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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국회가 올스톱됐다. 내년도 예산안과 법안 등 각종 현안을 논의하던 상임위원회가 25일 오후 갑자기 중단됐다. 어느 회의장이건 과반수를 차지하던 한나라당 의원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이와 함께 국정도 마비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한나라당 정의화 수석부총무는 "이제 식물 국회가 된다"고 선언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특검법안을 거부하자 한나라당이 국회를 전면 보이콧해 빚어낸 풍경이다.

국회 예결위는 문을 연 지 10분 만에 다시 문을 닫았다. 이윤수(민주당)예결위원장은 단상에 올라 한나라당 의원들의 불참으로 썰렁해진 의석을 바라보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 의석에 앉아 있는 민주당과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의사 정족수(10명)를 넘겼는지 일일이 머릿수를 세기도 했다. 그런 뒤 李위원장은 착잡한 표정으로 회의 진행을 선언했다.

그러나 민주당 박병윤 의원과 열린우리당 이강래 의원이 "회의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 한나라당이 참석할 때까지 기다리자"며 산회를 요구했고, 李위원장은 머뭇거리다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으나 일단 내일까지만 기다려 보자"며 회의를 끝냈다. 이날 열린 기후협약 특별위원회도 의원들의 무더기 불참으로 20분 만에 끝났다.

이에 앞서 오전에 열린 국방위.건교위.과기정통위 등도 한나라당이 오후 의원총회 이후 보이콧할 것을 의식해 평소보다 서둘러 진행됐다.

문제는 불과 1주일 앞으로 다가온 예산안 법정처리 시한(12월 2일)을 넘길 게 불 보듯 뻔하다는 점이다. 심의는 어떻게 마치더라도 이를 통과시키기 위한 의결 정족수를 채울 수 없기 때문이다. 다른 주요 정책과 민생법안도 한나라당이 계속 불참하는 한 처리할 수 없다. 盧대통령이 국회에 처리 협조를 당부한 이라크 추가 파병, 신행정수도 이전 법안, 자유무역협정(FTA)동의안 등이 갈 길을 잃었다.

법인세 2% 인하 내용을 담은 세법 개정안과 농촌 지원 특별법안 등 경제 및 민생 지원 법안의 통과는 내년으로 이월될 가능성이 커졌다. 무엇보다 대선자금 수사로 촉발된 지구당 폐지 등 정치권의 정치개혁 입법안은 시작 단계에서 주저앉을지 모른다.

박관용 국회의장은 盧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비판하면서도 한나라당에 대해 "제1당으로서 국민의 입장에서 납득할 수 있는 신중한 판단을 해달라"며 국회 마비 상황을 우려했다고 한다.

강갑생 기자<kkskk@joongang.co.kr>
사진=안성식 기자 <anses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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