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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집 쑤신' 수능 재채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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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전문가들도 이의를 제기했지 않느냐. 5번도 맞다."

"복수정답은 말이 안된다. 2점 차이로 대학 못가면 누가 책임질 것이냐."

수능 출제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과 교육인적자원부가 24일 올해 수능시험에서 오답 시비가 일었던 언어영역(짝수형) 17번 문항에 대해 복수정답을 인정하자 학생.학부모들의 희비가 엇갈리면서 거센 논란이 일고 있다.

평가원 홈페이지는 이날 낮부터 사실상 불통상태다.

"뒤늦게나마 잘 결정했다"는 환영의 목소리와 "복수정답은 안된다"는 격앙된 반응, 수험생들끼리 정답을 놓고 비난하는 인신공격성 글로 도배질되다시피 했다. 이런 가운데 "또 다른 문제도 복수정답을 인정하라"는 새로운 요구까지 줄을 이었다.

학원강사 경력자가 출제위원에 포함되는 등 시험의 공정성에 흠집이 가는 일들이 잇따르면서 이러다간 올 입시에서 수능성적이 신뢰를 잃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꼬리 무는 정답시비=조선시대를 묘사한 족보 등 예시문을 주고 이를 통해 추론할 수 있는 조선후기 향촌사회 모습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을 고르는 사회탐구(짝수형) 67번 문제가 대표적이다.

평가원은 보기 ②번인 '종법적 가족제도의 정착으로 민촌이 반촌(班村)으로 변화하였다'를 정답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일부 수험생과 교사들은 "보기④도 정답"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사족들은 족보와 종계를 기반으로 향촌사회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시켜 갔다'는 보기④가 조선후기 시대상과 명백히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밖에 춘향전과 호랑이 민화를 제시한 뒤 이 작품들이 유행한 시기의 문학과 예술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을 고르는 사회탐구(예체능) 71번 문제도 논란이 되고 있다. 평가원은 보기 가운데 ②번인 '관동별곡.사미인곡 등의 가사문학이 발달하였다'를 정답으로 했으나 보기 ①번도 답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과탐 화학Ⅱ 67번(4가지 화합물의 루이스 전자식을 제시한 뒤 이를 토대로 이 물질들의 특성과 구조를 설명한 예시문 중 옳은 것을 모두 고르는 문제)의 경우는 문제 자체에 이의가 제기되고 있다.

◇수험생 간 '싸움판'=복수정답을 놓고 벌어지는 수험생들의 '힘겨루기'도 나타나고 있다.

언어 영역 17번에서 ⑤번을 선택한 학생들이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개설한 카페에서는 "수고했다. 축하한다"는 자축의 글이 올라온 반면 ③번을 선택한 수험생들로 구성된 카페는 복수정답 인정에 불만을 품은 학생들이 몰려들어 "사이버 시위 등 구체적인 행동에 나서자"며 반발하고 있다.

서울 K고 이모 교사는 "자기 집단만의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행동이 사회 문제화된 가운데 학생들에게조차 비슷한 일이 번지는 양상"이라고 우려했다.

김남중.강홍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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