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기 관세 없애야 「비리의 끈」 풀린다|이상만 <음악 평론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5면

외국제 현악기의 거래에서 패생된 문제들이 세상을 놀라게 했다. 언론들은 폭리를 취하는 악기상과 음악 교수들이 야합해 만들어 놓은 지탄받아야 할 일이라고 통렬히 비판하고 있다. 더구나 음대 입시 부정 사건의 여파가 채 가라앉기도 전에 이 사건이 터져 음악을 가르치는 지도자들은 고개를 못 들게 되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사회 윤리의 문제요, 더구나 신성한 직업을 가진 예술가들이 잿밥에 눈이 어두운 것같이 되어 버렸다. 그러면 이처럼 잘못된 현상의 원인은 무엇인가.
소개료를 받은 교수들에게 중죄를 덮어씌워 일벌백계하고 폭리를 취한 상인들에게 벌금형을 가하는 사법적 처리로 해결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고 본다. 오늘날 악기 문제의 비리는 좁혀 말해 악기의 유통 구조에서 빚어지고 있다. 오늘날 우리 나라에 수입되는 현악기의 주종은 소위 이탈리아에서 만들었다는 1백년 이상 된 것들이다. 따라서 이 악기들은 골동품의 범주에 속한다. 골동품은 수가 한정되어 있고 날이 가면 갈수록 값이 치솟게 되어 있다. 스위스와 같은 나라에서는 옛날 악기에 대한 투자가 증권 투자처럼 성행하고 있다.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고악기를 국가가 관리하고 있다.
최근 일본에서는 고악기 수집 붐이 일고 있다. 국립 음악 학교와 사립 음대, 그리고 교향 악단들이 앞을 다투어 악기를 사 모으고 있다.
그만큼 세계의 악기 시장은 그 수요의 폭증으로 값이 오르고 있다. 그런데 세계에서 악기가 제일 비싼 나라는 한국이다. 오죽하면 세계적 골동품상의 상징적 존재인 소더비도 한국에 진출해 있겠는가.
왜 한국에서는 악기가 비쌀까. 그것은 악기가 귀하기 때문이다. 그 동안 우리 나라에는 옛날 악기를 내놓고 말수 없는 유통 구조였다. 즉 오래된 악기가 마치 사치품처럼 취급되어 본의 아니게 밀수와 같은 형식을 거쳐 국내에 반입되기 때문에 악기를 들여오는데 그만큼 위험 부담이 따르고 비싼 관세 장벽, 그리고 음성 거래를 통한 비싼 소개료 등을 악기를 사는 사람이 모두 부담해야 되기 때문에 비싸질 수밖에 없다.
미국·일본도 그런 관세 장벽을 없앤지 오래다. 음성적 유통 구조에서는 자연히 그 악기의 질과 실제 가격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에 개인 지도를 하는 선생들의 보증을 받아야되는데 이것도 위험스런 일이어서 자연 소개료 같은 것이 생겨난다.
따라서 이 기회에 제언하고 싶은 것은 악기·미술품 등 1백년 이상 된 물건이 수입될 때는 관세를 철폐하라는 것이다.
또 악기의 값어치를 공인하는 감정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해외에 나가 있는 사람들 가운데는 이주호·진창현 같은 세계적 현악기 제작자가 있고 국내에도 외국에서 훈련받고 돌아온 많은 전문가들이 있으니 이들을 중심으로 현악기 감정사 자격을 주고 협회를 조직하는 등 공인 기구가 절실하다.
하루 삘리 현악기 제작 산업을 국내에서 발전시켜 이것이 산업적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우리 나라 음악 문화 육성에도 도움이 될 수 있는 입체적 정책도 수립되어야겠다.
2백년 전에 프랑스에서 태어난 비음이라는 바이올린 제작자는 당시에도 명기였던 스트라디바리우스를 모작해 큰 성공을 거두었다. 지금도 비옴의 가짜 악기는 금값이다. 이탈리아 악기의 전통을 답습한 독일의 미텐발드, 프랑스의 미르쿠르, 체코의 쉔바흐 등 악기 산업은 국가의 명예와 긍지를 지니는 산업이기도 했다.
국내의 고급 악기 산업을 육성시키고 외국에서 음질 좋은 악기도 정상적인 과정을 통해 싸게 수입해 사용되게 해야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