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돌맞은 기획원에 바란다/방석현 서울대 행정대학원교수(특별기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우리경제 「큰눈」으로 보자/각분야의 전문가들 망라/종합기획능력 강화 필요
경제기획원이 30년을 맞는다. 인생으로 생각하면 경험과 배움을 토대로 창의력을 발휘해 성취감을 느끼는 나이가 된 것이다. 기실 경제기획원의 지난 30년이 단순한 배움의 과정만은 아니었다.
60년대 불모의 상태에서 한정된 자원을 배분,산업기반과 사회간접자본에 투자해 기초산업을 육성하고 70년대의 본격적인 공업화,그리고 80년대의 자율화,물가안정,복지사회화로 이어지는 경제력 향상과 국가위상제고 과정에서 경제기획원은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이는 수출주도의 산업화를 통한 발전이라는 확대적 국가목표와 경제기획원이 맡은 광범위하고 강력한 기획·조정의 역할이 잘 맞물린 결과였으며,또한 정치적 이해관계에서 한걸음 물러서 있는 기획원의 기관적 순수성(자율성)이 이를 담당한 우수한 인력과 조화를 이룬 결과였다.
물론 70년대의 공업화과정에서 전문성,과학기술력의 부족으로 투자결과를 제대로 얻어내지 못하거나,80년대에 첨단기술과 인력확보를 위한 체제를 갖추지 못하고 방관했으며,환경변화에 적절히 대응치 못해 경쟁력 확보와 정보화에 미흡했던 등의 잘못 또한 있었음을 부인할 수는 없으나,그것이 경제기획원이 이룬 공을 가릴 수 없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시대적 변화는 기획원에 새로운 역할을 요구하고 있다. 블록화해 가는 선진국 경제와 통상압력의 강화,그리고 국내 여러가지 산업의 생존자체를 위협하는 개방화는 기술개발과 경쟁력 제고의 필요성을 한층 더 절박하게 만들고 있으며 사회가치관의 변화,국민생활의 질적 측면인 복지적 요구의 증대와 함께 국가전략의 변화라는 과제를 제시하고 있다.
또한 복잡하고 다양해진 현대사회는 반면 각 부문의 연계도 긴밀해져 한 부문의 변화가 사회전반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일례로 첨단기술이 산업경쟁력 뿐만 아니라 산업 및 고용구조,도시화,환경,교육,사회가치관,정치권력에 이르기까지 각 부문의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이러한 상황은 경제기획원의 새로운 위상정립을 통하지 않고서는 해결이 힘들게 되었다. 각 부문의 분권화된 전문성에만 의존하는 경우 재정·인력 등의 자원면에서 한계에 부닥치게 되고,상호 영향을 미치게 되는 정책들이 불협화음을 낳게 된다.
행정의 조정능력이 어느때보다도 절실한 것이다. 그리고 환경의 변화에 대해 대응하고,혹은 바람직한 방향으로의 변화를 주도하기 위해서는 장기적이고 종합적인 기획능력 역시 필요하다. 즉,국가전략적이라는 측면에서의 장기적이고 종합적인 기획 및 조정능력이 더욱 요구됨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현재의 기획부서를 전략적 기획팀으로 보강하고,각 부처 및 연구소에서 인력,산업,통상,지역개발,과학기술,정보,환경,보건의료,교육 등을 망라하는 전문가를 뽑아 종합팀을 구성해 중장기 전략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시급하게 닥친 통상개방,과학기술,산업,정보화,사회복지,제도개선,국토기획 등의 부문에 전문적 기획팀을 두고 관련부처,전문연구기관들과 연계해 조정기능을 수행해야 할 것이다.
차제에 공정거래위원회를 독립위원회로 분리하고 예산실의 기능도 각 부처에 주재관을 두어 세세한 부분은 각 부처의 의견을 수렴하고 전체적 배분만을 전략팀과 전문팀의 협조하에 결정토록 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현재의 점증적 예산배분은 예산배분의 성격을 왜곡시키고 급격한 환경변화에 대한 대응을 어렵게 만들 뿐이다.
이러한 경제기획원의 역할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조직개편을 주장하는 논의도 있다.
즉,권력구조면에서 비서실·총리실 등과 중복되는 부분이 많으므로 오히려 총리실 등에 기구보강을 하자는 입장이다.
그러나 기구의 이전이 어디로 이루어지더라도 보강은 필요하게 되고,단지 정치권력과 직결시킬 경우 전략적으로 설정된 정책방향을 왜곡시킬 가능성이 높아져 경제기획원의 자랑인 「기관적 순수성」을 해치는 결과를 낳기 쉽다. 또한 기존의 조직풍토와 인력구성을 새로운 조직에서 정립시키는데 상당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그리고 여전히 경제행정이 대단히 중요하고 축소할 수 없는 상황에서 경제기획원의 역할을 다른 조직에 맡기는 것은 위험부담을 안게 된다. 국제정치와 북방,통일,지역 등의 모든 문제와 긴밀하게 연계된 축으로 기능하는 경제정책에 있어 전문적 경험을 쌓아온 경제기획원 없이 해나갈 자신이 있는 위정자는 과연 몇이나 될 것인가 의심스럽다.
지금까지 경제기획원은 경제전문가에 의한 「위탁관리」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정치흥정에서 경제부문의 합리성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경주해 왔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환경은 새로운 변화를 요구하고,이를 수행할 능력은 변화를 향한 노력을 통해 나타나게 된다. 다양하고 복잡해진 목표는 재정부담을 전제로한 문제해결 방안보다는 창의적인 정책과 적절한 정책수단의 선택을 위한 노력을 통해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