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서/조만식선생의 최후 확인이 갖는 의미(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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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과거의 사실이 햇볕을 받으면 역사가 되지만 달빛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의 뜻은 과거 사실이 객관적 연구와 검증을 통해서 밝혀질 때 비로소 올바른 역사가 될 수 있고 그것이 권력자나 통치집단에 의해 왜곡되고 변질되어 꾸며질 때 신화가 된다는 교훈적 의미를 담고 있다.
우리에게 가장 가까우면서도 생생한 아픔으로 남아있는 광복에서 6·25까지의 짧으면서도 격동에 찬 현대사는 역사와 신화가 혼재하는,어찌보면 매몰된 역사의 장이 되어있다.
매몰된 역사,잊혀지고 왜곡된 과거사실을 한겹씩 들추면서 역사의 실체에 접근하려는 노력이 한 신문기자의 집념에 의해 밝혀지고 있음을 높이 평가하게 된다.
중앙일보 김국후 특파원이 북한부수상을 지낸 박헌영의 유일한 혈육,박 리바안나씨와 가진 극적인 인터뷰(7월10일자)나 민족주의자 고당 조만식 선생이 총살당했다는 증언 기사(7월19일자)모두가 매몰된 역사의 한 장을 복원하는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박헌영의 친딸 인터뷰는 한국 공산주의운동에서 중대한 역할을 담당했던 인물에 대한 평전적 자료로서,고당의 총살증언은 6·25이후 북한 공산당의 향방을 가늠하는 중요한 단서로서 의미를 지닐 것이다.
뿐만 아니라 소군정의 정치장교가 고당을 평양시내의 한 요정으로 초대해 술을 권하며 군정협조를 요청하는 한장의 사진은 당시의 정황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귀중한 사료다.
최근 소련·중국과의 문호가 열리면서 현대사에 관한 양국 쪽의 증언이나 기록이 어느때보다 활기롭게 공개되고 있음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닫혀있고 매몰되어있던 증언이나 기록들이 의외성이나 폭로위주의 흥미본위에 편승해 여과와 검증없이 무분별하게 보도되고,그것으로 끝나버린다면 올바른 역사작업이 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닫혀진 북의 현대사를 체계적으로 접근하기 위해서는 소련과 중국쪽의 증언과 기록이 보다 엄정하고 다각적인 각도에서 검증되고 종합화되는 작업이 뒤따라야 할 것이라고 믿는다.
소련쪽의 경로를 통하는 작업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남북역사학자들간의 왕래를 통해 현대사를 상호 직접 연구하는 기회도 빠른 시일내에 다가오기를 기대한다.
오늘의 기자란 오늘의 사건만을 쫓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사건도 쫓아 매몰되고 잊혀진 역사를 복원하는 역사가의 역할도 담당할 수 있다는 새로운 가능성을 김기자는 제시했다.
이런 노력이 왜곡되고 변질된 우리의 현대사를 바로잡는 계기가 되고 달빛에 물든 신화를 올바른 역사로 전환시켜 놓는 노력이 여러 분야에서 일어나는 촉진제가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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