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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 돌려막기 어려워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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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사흘 동안 현금서비스를 중단했던 LG카드가 채권단의 긴급 자금지원으로 벼랑 끝에서 기사회생했지만 그 후유증이 금융시장을 짓누르고 있다.

궁지에 몰린 카드사들이 앞다퉈 현금서비스와 결제한도를 줄여 '신용카드 돌려막기'로 겨우 연체를 면해 온 상당수 카드 회원이 신용불량자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다. 카드사가 발행한 채권을 가지고 있는 기업.개인은 언제 카드사 위기가 재발할지 몰라 전전긍긍하고 있다. 경기 침체로 큰 폭의 적자를 낸 은행.보험사는 카드사에 대한 신규 자금 지원으로 부담을 더 안게 됐다.

◇비상 걸린 다중채무자=우리카드는 지난 18일 카드론(카드 신용대출)을 중단하고 20일 신용등급이 낮은 고객 6만3천여명의 카드 전체 이용 한도를 줄인 데 이어 추가로 한도를 줄이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삼성카드도 LG카드를 중복으로 가지고 있는 회원에 대해 현금서비스 이용한도를 월 평균 이용액 수준으로 대폭 줄였다. 국민.하나.신한.외환카드도 다른 카드사가 이용한도를 줄일 경우 신용도가 낮은 고객이 자사 카드 사용을 갑작스럽게 늘릴 것에 대비해 불량고객 선별작업에 나섰다.

각 카드사가 카드 이용한도를 줄이는 주된 타깃으로 삼고 있는 사람은 신용카드를 4개 이상 가지고 있는 9백88만명의 다중 채무자들이다. 카드업계는 이들 중 10~15%인 98만~1백47만명이 '돌려막기'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카드사들이 이들에 대한 카드 이용한도를 일제히 줄이고 나설 경우 상당수가 연체자나 신용불량자로 전락하는 게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애물단지 카드채=3천여만원어치의 LG카드 후순위 전환사채(CB)를 보유한 자영업자 朴모(39)씨는 요즘 밤잠을 못 이룬다. 급전이 필요해 전환사채를 주식으로 바꿔 팔려고 했으나 LG카드 주가가 곤두박질해 현금화 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전환사채를 그냥 팔 수도 없다.

LG카드가 7월과 8월에 발행한 1만원짜리 CB와 신주인수권부사채(BW)는 24일 발행가의 절반 수준인 5천5백원으로 떨어졌다. LG카드가 발행한 카드채는 지난 18일 현재 총 7조6천여억원에 이른다. CB와 BW도 각각 3천억원씩 발행됐다. LG카드 위기가 재발할 경우 총 11조원에 달하는 채권이 모두 휴지조각이 될 수 있어 LG카드채를 보유한 금융회사나 기업.개인은 앞으로도 위험 부담을 안고 갈 수밖에 없다.

◇갈 길 먼 카드 정상화=23일 심야 협상에 이어 채권단은 24일 일사천리로 LG카드 지원을 결의했다. 은행들은 농협 5천1백40억원, 국민은행 4천3백70억원 등 할당금액별로 총 2조원을 LG카드가 필요할 때 언제든지 찾아갈 수 있도록 조치했다. 보험.투신사도 이날 오전 LG카드에 빌려준 돈을 1년 간 만기 연장해주기로 했다.

그러나 채권단 지원에도 불구하고 LG카드와 LG그룹 계열사의 주가는 폭락했다. LG카드가 시장의 신뢰를 잃었다는 뜻이다. 무엇보다 채권단의 지원규모가 충분치 못한 것으로 금융계는 보고 있다. LG카드는 올해 1조5천억원에 이어 내년에도 1조원이 넘는 적자를 낼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채권단의 자금 지원 규모는 적자를 메우기도 버겁다는 것이다.

교보증권 성병수 연구위원은 "LG카드의 총부채가 24조원에 이르는 점을 고려하면 2조원의 신규 지원으로는 내년 1분기까지 버티기 힘들다"며 "LG그룹이 약속한 1조원의 자본확충을 연내에 조기 집행하는 등 그룹과 카드의 강도 높은 자구노력이 있어야 시장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LG카드도 본격적인 구조조정에 착수하기로 했다. 연말까지 5백여명의 직원을 대상으로 명예퇴직 신청을 받고 영업망도 대폭 줄인다는 복안이다. 그러나 LG카드의 경영이 정상화되려면 무엇보다 경기가 회복되면서 연체율이 떨어져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정경민.김준현.김창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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