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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중견기업] 아이레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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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디지털도어록 '게이트맨' 제조업체 아이레보(iRevo)는 이름부터 도전적인 회사다. "I Revolutionize the world(세상을 바꾼다)"의 뜻을 담고 있다. 이 회사는 접속할 때마다 암호가 바뀌는 '플로팅 ID(floating ID)'라는 특허 기술 하나로 1997년 창업했다. 기술만 믿고 창업하다 보니 처음엔 자금.마케팅이 달려 성장이 더뎠다. 2000년 매출이 고작 8억원에 불과했다. 하지만 4년 뒤인 2004년엔 매출이 400억원을 넘어섰다. 그해 다국적 컨설팅사 딜로이트는 아이레보를 아시아의 고속성장 기업 500개 중 81위에 선정했다. 이 회사는 특허 47건 등 200여 건의 지적재산권을 갖고 있다.

97년 '파아란테크'라는 이름으로 시작할 당시 이 회사의 둥지는 경기도 안양시 관양동의 옥탑방이었다. 하재홍(42.사진) 사장과 경리직원 1명, 영업사원 1명이 전부였다. 하 사장은 "화장실 문고리가 떨어져 끈을 붙잡고 볼일을 봐야 했다"고 그 시절을 기억했다. 100만 대 이상 팔려 아파트 현관문 3~4개에 하나꼴로 달려 있는 '게이트맨'의 탄생은 우연에 가까웠다. 대우전자에서 전자제품 구동 소프트웨어 개발을 담당하던 하 사장은 94년 9월 중앙일보에 실린 기사를 보고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복제한 열쇠로 서울 강남지역 목욕탕을 돌며 훔친 5억여원으로 세 자녀를 유학까지 보낸 50대 여성이 잡혔다'는 내용이었다. "열 때마다 암호가 바뀌는 자물통을 만들면 열쇠를 복제해도 문제될 게 없을 것"이라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이를 구체화해 '플로팅 ID'라는 특허를 국내외에 출원했다. 하지만 97년 창업할 때 하 사장이 처음 시작한 사업은 MP3 라디오와 '플로팅 ID'를 응용한 '온라인 인감 도장'이었다. 결과는 참담했다. 5000개를 생산했던 MP3 라디오는 딱 7개 팔렸고, 온라인 인감 도장은 시대를 너무 앞선 개념이어서 실패했다. 그러던 중 외환위기가 닥쳤다. 특허 아이디어는 싹을 틔우기도 전에 사라질 위기였다. 결국 하 사장은 아내에게 "사업을 해도 집에는 절대 손을 안 대겠다"고 한 약속을 깰 수밖에 없었다. 집을 담보로 빌린 돈으로 위기를 넘겼다. 투자자 설득을 위해 '플로팅 ID'를 눈에 보이는 제품으로 만든 게 디지털 도어록이었다.

디지털 도어록의 탄생 이후 성장가도를 달리던 아이레보는 2005년 말 강력한 복병을 만났다.

한 열쇠공의 제보로 터진 '전기충격기 쇼크'다. 3만 볼트 이상의 순간적인 고전압을 가하면 디지털 도어록이 오작동을 일으켜 문이 열린다는 것이었다. 연일 공중파TV에 이런 사실이 보도되면서 회사 상담 전화에 불이 났다. 3만 볼트는 자동차와 비행기, 의료장비를 포함한 모든 디지털 기기에 오작동을 일으킬 수 있는 고전압이었고, 전기충격기로 문을 여는 것은 문을 부수고 들어가는 것과 다를 게 없었다. 하 사장은 "억울한 마음도 있었지만 결국 고객 입장에서 생각하자"고 마음먹었다. 재빨리 전국 200여 개 AS망을 통해 기기와 소프트웨어에 대한 무상 업그레이드를 실시했다. 지난 한해 여기에 들어간 비용만 40여억원. 대행 판매 형태의 유통망을 직영 판매 체제로 바꾸는 데도 많은 돈을 들였다. 고객에게 보다 가까이 다가가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이런 노력은 25억원의 영업적자로 돌아왔다. 하지만 하 사장은 "위기를 극복하는 데 필요한 것은 '고객 중심의 원칙'이라는 것을 전직원이 깊이 새긴 것만으로도 실보다는 득이 크다"고 말했다.

올해 이 회사의 목표는 두 가지다. 하나는 이제 움트기 시작한 중국과 미주의 디지털도어록 시장에 '아이레보' 깃발을 꽂는 것이다. 이미 5년 전 진출해 상하이 고급 아파트 단지 등에서 인지도를 얻고 있는 중국 시장은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폭발적으로 성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전세계 판매망을 갖춘 아나로그 열쇠 메이커들이 '미주 시장에 동반 진출하자'며 보내고 있는 '전략적 제휴 러브콜'도 신중히 검토 중이다. 또 하나의 도전은 '웰빙 가전' 분야 진출이다. 이미 방문 관리가 필요없는 디지털 연수기 개발을 끝마치고 3월 출시를 준비 중이다.

글=임장혁 기자, 사진=변선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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