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판매실적"곤두박질"|「인스턴트 책」만 찾아|울상 짖는 서점·출판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8면

책이 잘 안 팔려 서점·출판계에 비상이 걸렸다. 대형 베스트셀러를 낸 몇몇 출판사를 제외하면 올 5·6월 판매실적은 작년의 절반 수준이라는 게 출판사들의 일치된 의견이다.
교보문고가 6월초부터 휴업한 덕에 호보를 보이고 있는 종로서적·신촌문고 등을 뺀 서점들도 거의 울상이다.
책이 안 팔리는 것보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독서경향. 그나마 팔리는 책도 인스턴트 도서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읽기 쉬운 만큼 잊어버리기도 쉬운 책들-정치한 논리가 빠진 인생론, 현실 도피적 명상서적, 문단에서 언급조차 하기 싫어하는 긴 제목을 가진 시집들이
베스트셀러의 주류를 이룬다.
오쇼 라즈니쉬의 단편적인 말이나 우화들을 모아놓은『배꼽』이 6개월 이상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하고 『소설동의보감』이 1백 만부를 돌파하는 등 대형히트 작품이 나오는 속에 대부분의 책들은 독자의 눈길을 끌지 못한 채 잊혀져 간다.
이 같은 현상은 교보문고가지난해 12월부터 휴업에 들어가기 전인 5월31일까지의 판매고를 종합한 올 상반기베스트셀러 집계에서 잘 드러 난다.
지난 6개월간 교보문고 매장에서 팔린 3백32만9천8백12권의 도서 가운데 베스트셀러 종합 50위안에 드는 것을 분야별로 보면 지난해 하향세였던 소설과 비소설부문이 강세를 보인 반면 인문·사회과학 부문이 퇴조를 보였다.
분야별 베스트셀러를 보면 소설의 경우 청소년용 영상소설이 4편, 기업인·역사적 인물 등을 다룬 전기소설이 3편, 전경소설 1편 등 흥미위주의 대중소설이 주종을 이룬다.
종합 50위 권에 8종이 포함된 사회과학서는 한때 붐을 이루었던 이념서적과 증권·부동산등 돈벌이용 책들이 최근 침체 분위기에 따라 퇴조하고 앨빈토플러의『권력이동』, 이태형씨의『2000년의 한국』등 2권의 미래진단서를 제외하면 『재미있는 경험이야기』류의 기업경영 관련서들이 주종이다.
책이 안 팔리는 이유에 대한 출판계의 분석은 대체로 일치한다.
첫째 전반적인 사회분위기가 안정을 잃은 채 혼미를 거듭함에 따라 독자들도 사색을 요구하는 책보다 흥미위주로 책을 선택하거나 뇌동 구매에 이끌리고, 둘째 우리 경제의 볼륨이 커짐과 비례해서 출간되는 책의 종류도 엄청나게 늘어나 광고가 뒷받침 안될 경우 내용이 아무리 좋더라도 치열한 경쟁을 뚫지 못해 사장되는 경향이 높아졌고, 셋째 소련 및 동구권의 개방으로 이념서적에 대한 호기심이 크게 줄었으며, 넷째 87년6월 사태 이후 각계에서 분출되는 민주화 요구는 과거의 추상적·이론적 수준을 뛰어넘어 구체적이고 다양화되고 있으나 이를 출판사들이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
민음사 기획실장 이영준씨는『책의 판매는 사회 분위기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므로 요즘과 같은 인스턴트독서 경향을 개선하는데는 사회분위기의 안정이 관건』이라고 설명했다.
또 사계절출판사 대표 김영종씨는『이념도서의 퇴조는 현실 사회주의 국가의 변화와 더불어 당분간 불가피하다』고 내다보면서『사회과학도서의 대중화와 출판영역의 다변화를 통해 새로운 독자층을 개발해 나갈 수 밖에 없다」고 밝혔다. <최형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