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외교 낭비요소 없었나/문창극 워싱턴특파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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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노태우 대통령의 미국·캐나다 방문이 끝났다.
특히 노대통령의 미국 방문은 26년만의 국빈방문인 관계로 행사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컸다.
다만 이번 방문을 지켜보면서 우리도 이제는 우리의 민주화와 선진화에 걸맞은 정상외교를 벌여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오랜만의 국빈 방문이라는 점 때문에 행차를 거창하게 꾸미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었을 것이다.
공식·비공식 수행원 외에도 경제인 24명,기자단 60여명 등 규모가 그 어느때보다 방대했다.
비공식 수행원 가운데는 이번 행사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인사들도 많이 포함돼 있었다.
밥상을 차리는데 젓가락 하나 더 얹는다는 생각에서 이 사람,저사람 위로 출장을 왔다는 생각까지 들게했다.
경제인만 하더라도 이곳 현지에서 정상회담과 때를 맞춰 모임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대통령 행사를 빛내주기 위한 장식역할을 위해 온 것이다.
불필요한 인원이 많아 잡음도 늘어나게 됐다.
백악관 환영행사만 하더라도 국빈방문의 경우 양측에 환영위원회가 구성되는데 우리측은 서울에서 온 인사들이 이에 끼고 싶어해 당연히 참석해야 할 현지 인사들은 제외됐다.
따라서 환영위원회 자리에 수행원들이 죽 늘어서는 웃지못할 해프닝도 일어났다.
백악관 만찬만 하더라도 이사람,저사람 서로 들어가겠다고 했으나 미국측은 관례상 14명밖에는 안된다고해 밀고당기다 결국 일부 경제인들은 자력으로 부시의 초청을 얻어내기도 했다.
우리의 외교교섭 능력이 기업가들의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게 됐다.
정상의 나들이가 거창하다는 것은 그만큼 국민이 낸 세금에 낭비가 따른다는 얘기가 된다.
미국에서는 존 수누누 비서실장이 공용승용차를 잠시 개인용도로 이용했다해서 곤욕을 치르고 있다.
만일 미국대통령이 우리와 같은 나들이를 했다면 어떤 파문이 번질까 가위 상상할 수 있다.
지방의회 선거를 했다고 당장 민주화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국민의 세금이 효율적으로 사용되었는가,불필요한 권위를 위해 국력의 낭비는 없었는가를 반성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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