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와 함께|집단 속 자유인의 의미 추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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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작가 고원정씨(35)가 전작장편『빙벽』전9권을 이달말께 완간한다. 89년 7 월 현암사에서 제1부「우상의 땅」3권을 펴낸이래 꼭 2년만에 원고지 1만2천장 분량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된 것이다.
80년 6월에서 81년 10월까지 한 전방부대를 배경으로 한『빙벽』은 군이 상징하는 전체주의적 구조 내지 사고에 적극적으로 반항하는 현철기소 위와 내면적으로 소화해 내는 사병 박기섭을 주인공으로 하여 그들의 성장과정, 3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가족사, 그리고 현재의 군 생활을 교직 시켜가며 사회구조 내에서의 진정한 자유인의 의미를 묻고 있다.
8권까지 나온 상태인 현재『빙벽』은 총 25만 부가 팔려나가 85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거인의 잠』으로 나온 문단 6년 생인 고씨를 대형작가 군에 올려놓았다.
-당초 10권 계획이었던 것으로 아는데 왜 9권으로 완간하려 합니까.
▲대하소설 격식을 갖추기 위해 10권은 일종의 에필로그로 90년대 이야기를 다루려 했습니다. 10년이란 세월이 흐른 뒤 전체주의에 희생당한 주인공들의 얽힌 이야기를 풀어주려 했는데 우리의 현실이 그렇게 변하지도 않았고…. 그러나 무엇보다 작품 자체의 밀도를 떨어뜨릴까 우려한 때문입니다. 발빠르게 밀어붙이다가 에필로그의 후일담에서는 아무래도 이야기가 축축 처져 독자들을 사로잡지 못할 것 같아서요.
-완간되지도 않았는데『빙벽』이 벌써 베스트셀러에 오른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봅니까.
▲물론 그 동안 금기시 됐던 군을 리얼하게 파헤쳤다는 점이 독자의 흥미를 끌었을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긴 소실임에도 불구, 짧고 강렬하게 읽을 수 있도록 한 구성과 문체가 독자들을 끌어들인 것 같아요. 요즘20, 30대들은 영상매체·영상적 상상력에 길들여져 있어요.
그들은 호흡이 길거나 너저분한 묘사 등은 싫어하지요. 대화와 지문의 리드미컬한 대비, 인상적이고 강렬한 묘사로 그들의 요구에 부응하려 했어요. 소설로서의 흥미나 독자들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는 것은 작가로서 직무유기라고 봐요. 그러려면 무엇 하러 상업출판을 합니까.
-지금까지 우회적 기법으로든 혹은 정공법으로든 군과 정치문체만 다루어 온데는 무슨 이유라도 있습니까.
▲집단 또는 사회구조 속에서의 개인의 자유를 추구하는 것이 제 소설의 일관된 주제입니다. 개인과 집단 사이의 관계가 가장 극적으로 떠오르는 곳이 바로 군과 정치 아니겠습니까. 그러다 보니 소재적 측면에서 그 언저리를 못 떠나고 있는 것이지 특별히 거기에 대해 많이 안다 거나 관심이 있어서는 아닙니다.
-데뷔 6년만에 작품집을`16권이나 퍼냈는데 검 없이 너무 다작하고있는 것 아닙니까.
▲전업작가로 나선 89년이래, 그러니까 2년6개월만에 15권을 펴냈지요. 또 현재 일간지 두곳과 문예지 한곳에 장편을 연재하고 있으니 주위에서「부지런한 작가」로 소문나 있어요.「부지런하다」란 말속에는 물론 다작으로 인한 작품의 질문제를 염려하는 뜻도 들어있겠지요.
그러나 저는 전혀 부지런한 사람이 아니에요. 날마다 술이나 마시고 게을러터진 사람이에요. 글만 써서 먹고살겠다고 나선 이상 좀더 정신차리면 지금보다 두배 이상인 한달에 원고지 2천장 분량은 쓸 수 있을 것 같아요. 뜸들인다고 좋은 소설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작품을 터뜨리는 작가의 집중도가 문제 아니겠어요. <이경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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