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노동자 시위 방식 문제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4면

지난 한달여 동안 다시 가파른 노사갈등이 이어졌다. 몇년 만에 화염병이 등장하고, 격렬한 가두시위 장면은 외신을 타고 세계인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처럼 지금 우리 노사관계는 불안정하다.

하지만 사회의 미래일 것이 분명한 청년들에게는 일자리가 부족하고, 늘어가는 고령층을 감당할 사회제도상의 준비는 미흡하기 짝이 없다. 지난 10여년 사이 세계화.외환위기 극복 등의 구호 속에 노동시장의 분단과 이중구조화는 더욱 심각해졌고, 비정규직 노동자의 비중은 날로 상승해 왔다. 정규직 노동자들의 실직에 대한 두려움은 증대하고 있으며, 이런 두려움은 조직노동자들을 조합주의적 이해를 관철하기 위한 극한 투쟁으로 몰아대는 내적 동기가 되기도 한다. 노동조합의 극한 투쟁은 노사 간의 불신을 더욱 고조시켜 정규직 고용 회피와 노조에 대한 공격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같은 노사관계의 악순환은 기업의 투자 위축, 일자리의 축소.정체로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악순환은 우리 노사관계의 세 주체인 노.사.정 누구도 원하지 않는 구조다. 우리 노동운동에는 다수 군중을 결집하는 위력시위가 일상화돼 왔지만, 다른 나라 노동운동에서 흔히 발견되는 기업이나 기업주를 향한 파괴적 공격성을 보인 바 없다. 우리나라 기업인들은 어느 나라에 비해서도 손색이 없는 도전정신과 성취동기를 보여주고 있고, 이런 동력은 우리 경제의 역동성을 이뤄왔다.

이런 점에서 우리 노사관계에서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대치와 충돌에도 불구하고 노사관계가 본질적으로 적대적이거나 파괴적인 것은 아니라고 믿는다. 문제는 우리 노동시장, 노사관계의 불안정성이며, 과제 역시 이 불안정성을 치유하면서 우리 노사관계를 선순환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노.사.정 세 주체의 결단과 용기다.

우선 노동정책 당국의 반성이 있어야 한다. 허겁지겁 분규 소식을 쫓아다니지는 않았는지, 일자리 확대, 비정규직 보호, 노동기본권 확대, 부당노동행위 근절 등 노무현 대통령의 공약을 이행하기 위해 진정 충분한 노력을 보여줬는지를 돌아보아야 한다. 정책 당국의 일관성 있는 태도야말로 노사관계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고, 기업가와 노동자의 신뢰를 이끌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사용자도 혹여 노동조합을 폄훼하고 부정하지는 않았는지, 일부 사업장에서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는 부당노동행위가 노동조합의 대결적 태도를 불러오고 있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조정되지 않는 갈등이야말로 결국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는' 고비용 노사관계를 구조화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노동계가 오늘 노사관계 악순환의 책임을 정부.기업가에게 돌리고 일탈적 분노 표출에 안주하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봐야 한다. 특히 화염병이 등장하는 등 최근의 폭력시위 방식은 노사관계 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고립을 자초할 뿐이다. 노사관계가 기업 단위로 철저히 분권화해 있고, 기업 차원의 노사 간 이해관계 충돌은 조정되지 못한 채 극한 대립으로 비화하곤 하는 현재의 노사관계 구조를 어떤 식으로든 개혁해야 한다.

또한 여전히 미조직 상태에 있는 대다수 노동자나 실업자군의 더 절박한 요구에 노동운동이 얼마나 귀를 기울이고 있는지 반성할 필요가 있다. 그들의 지지 없이 노동운동이 설 수 없으며, 국민적 이해와 격려 없이 노동운동의 새 지평을 열 수 없다는 절박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이제 우리는 이전 암울한 시대와 달리 대화와 타협이 가능한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 노사관계가 현재의 불안정성을 넘어서기 위해서도 지금의 노동운동은 기업을 타도의 대상이 아니라 기업의 생산성과 창조성을 인정한 상태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런 전제에서 출발할 때 우리 노동운동은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고 노동현장의 형평성을 높이는 것은 물론 사회통합에도 기여하게 될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그런 가능성을 현실화하기 위한 노동운동의 결단과 용기가 절실하다고 생각한다.

김영대 前 민주노총 부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