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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방송 프로그램 '베끼기' 논란 확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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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최근 일본 후지TV가 KBS와 SBS에 서면 질의서를 보냈다. 자사 프로그램과 '스펀지'(KBS)'TV장학회'(SBS)가 비슷하다는 의혹에 대해 공식 답변을 요구한 것이다. 양국 방송 관행상 전례가 없는 일이다. 물론 국내 방송사의 대응도 신속했다. 격앙된 반응을 보인 KBS는 19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제작진은 동영상 비교를 통해 표절 논란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현재로서 이 문제가 법적 분쟁으로 비화할 소지는 거의 없어 보인다. 방송위원회도 나설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 사건이 시사하는 바는 다른 데 있다. 그동안 한국방송의 '베끼기'를 묵과해 왔던 일본 방송들이 적극적 행동에 나설 것을 예고한 조치로도 해석되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이번 사건은 네티즌 사이에 '표절'논란을 확산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되고 있기도 하다. 특히 가을개편 이후 신설된 프로그램의 상당수가 '베끼기'논란에 휩싸인 상태다.

◇네티즌들 눈이 무섭다=시청률 50%를 넘으며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MBC '대장금'. 방영 초부터 일부 드라마.만화와의 유사성 논란이 일고 있다. 이런 시비는 MBC '행복주식회사', SBS '해결! 돈이 보인다'등도 마찬가지. 현재 네티즌들이 문제를 제기한 프로그램은 얼핏 꼽아도 10개가 넘는다. 대부분은 일본과 관련된 것이다. 특집 프로들은 더해 지난 추석에도 SBS '빅쇼! 삼총사'등 5, 6개 프로가 일본 방송을 모방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굳이 외국으로 눈을 돌릴 필요도 없다. 지상파 3사의 채널을 돌리다 보면 비슷비슷한 형식이 눈에 띈다. 이번 가을 개편에서 '경제'가 화두가 되자 방송사마다 유사 프로그램을 만든 식이다. 지난해에도 재연 프로가 인기를 얻자 무려 10개 가까운 프로가 전파를 탔다. 그래도 어느 방송사가 문제를 제기했다는 소리는 들려오지 않았고, 시청자들도 무감각해져버렸다. 이를 경실련 미디어워치 김태현 부장은 "나도 언제 타 방송사의 인기 코드를 참고할지 모르기 때문에 문제삼기 어려운 구조"로 해석한다.

◇방송사는 "억울하다"=방송사 PD들은 표절이란 있지도 않고 가능하지도 않은 일이라고 일축한다. 1970, 80년대나 가능했던 일이라는 것이다. 인터넷 등을 통해 다른 나라 프로그램을 볼 수 있는데, 베낀다는 건 불가능하다는 논리다. 그런데도 일부 네티즌의 근거 없는 의견을 언론이 인용하면서 창작자에게 치명적인 '표절'논란이 확산된다고 말한다. 문제 소지가 있으면 아예 정당한 대가를 치른다고도 한다.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브레인 서바이버'코너는 일본 TBS와 계약을 맺고 '포맷(형식 등)'을 사 왔고, SBS '최수종 쇼'도 '100% 프로포즈'코너에 대해 판권을 구입했다.

◇방송사 자체 심의 강화가 필수=논란만 무성할 뿐 결론이 나지 않는 게 표절이다. 2000년 이후 방송위가 표절로 제재한 것이 3건뿐이라는 사실이 이를 잘 보여준다. 국제법상의 저작권 보호 역시 쉽지 않다. 강용석 변호사는 "베낀 정도가 심하거나 표현 자체까지 똑같다면 몰라도 아이디어나 형식 일부가 비슷한 정도로는 법적 구제가 힘들다"고 설명한다.

이와 관련, 방송가에선 내부 검열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다. 한 방송사 중견 PD는 "심의 파트에서 방송중지를 명하는 등 과감한 조치를 내린다면 개선될 것"이라며 "그러나 번갯불에 콩 볶아먹듯 프로그램 개편이 이뤄지는 상황에선 쉽지 않다"고 말한다.

이런 가운데 내년 1월로 예정된 일본방송 추가개방이 하나의 전기가 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 김영덕 연구원은 "일본 방송사들은 이미 한국의 저작권 실태를 조사했으며, 표절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며 "방송 개방이 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방송위 오광혁 정책3 팀장도 "국가 체면을 생각해 표절 논란은 이제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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