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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시평] 언제까지 사교육 타령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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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수능시험이 끝나고 본격적인 대학 입학 시즌으로 돌입하면서 사교육이 맹위를 떨치고 있다. 지방의 고3 학생들이 논술과 심층면접 준비를 위해 서울 입시학원으로 유학오고, 심지어 고교 교사가 단체로 인솔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한 인솔 교사는 "최근의 논술이나 심층면접 문제는 너무 전문적이어서 일반 학교 선생님들의 손을 떠난 지 오래"라며 사설 학원의 정보력과 경험을 빌릴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고 한다. 하기는 이제 입시학원의 정보력은 어떤 공교육기관보다 막강하다.

*** 교육 황폐화 부른 하향 평준화

최근 서울대가 개최한 입시설명회는 썰렁했던 반면 한 인터넷 사설 입시기관이 실시한 입시설명회는 수많은 인파가 몰려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는 소식은 학부모들이 얼마나 사교육기관의 정보에 의존하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대부분의 고등학교에서는 사설 입시학원이 만든 배치기준표를 이용해 진학지도를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쯤 되면 공교육은 사교육과의 경쟁에서 완벽한 KO패를 당한 형국이다.

상황이 이 정도면 공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담당자들은 마땅히 책임을 지거나 최소한 공교육이 힘을 얻기 위한 특단의 대책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강남 학원을 특별 단속하고 세무조사를 실시한다는 등 사교육을 때려잡을 대책만 내놓고 있지, 공교육을 어떻게 강화하겠다는 청사진에 대해서는 감감무소식이다. 물론 사교육의 창궐은 사회의 형평성 문제를 야기하고 있어 그 대책이 절실하다. 하지만 그 대책은 공교육의 경쟁력을 높임으로써 사교육으로부터 학생들을 되찾아오는 방법이 돼야지, 사교육을 물리적으로 위축시켜 공교육과 같이 하향 평준화시키는 것이 돼서는 안 될 것이다.

대부분의 교육 담당자도 이러한 원칙론에는 동의하면서도, 공교육을 정상화시키기 위해서는 막대한 투자가 들고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당장 급한 대로 사교육을 손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언제까지 남의 탓이나 여건 타령만 할 것인가. 실제로 지금이라도 교사나 공무원들이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본연의 역할만 제대로 수행한다면 공교육의 위상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는 방법이 없지 않다. 아마도 고교의 학생부(내신) 성적 부풀리기만 없어져도 상황은 훨씬 나아질 것이다. 성적 등급을 올리기 위해 문제를 알려주고 시험을 치는 것은 학교 교육의 수준을 떨어뜨릴 뿐만 아니라 학생들에게 편법을 가르쳐주는 매우 비교육적인 일이다. 게다가 이러한 내신 부풀리기가 대학입시를 파행적으로 만드는 주요인이 되고 있다.

사실 내신.수능.면접의 세가지 구성요소로 이뤄진 현재의 입시제도 자체에는 큰 문제가 없다. 내신을 통해 고교 3년 동안의 과목별 학업성취도를 보고, 수능으로 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는 종합적인 사고력을 측정하며, 면접에서 학생들의 인성을 확인하는 것은 상당히 합리적인 구도인 것이다. 문제는 이 구도가 고교의 내신 부풀리기 때문에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데 있다.

*** 막강 조직 교원단체가 나서라

대학에서 학생부 성적을 믿지 못하니까 입학 전형에서 내신의 반영률을 낮추고, 이에 따라 수능의 비중이 너무 커지면서 난이도와 변별력의 문제가 생기자 대학별 심층면접을 도입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심층면접이라도 한 번의 면담으로 학생들의 능력을 알아내는 것에는 많은 한계가 있기에 고교 3년 동안의 성취도를 나타내는 학생부의 객관성만 보장된다면 대학에서도 심층면접을 굳이 고집하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고교의 내신 부풀리기를 없애는 것은 어느 한 학교나 소신있는 선생님 한 사람의 노력만으로 될 일은 아니다. 그러나 전국적인 조직을 가지고 있는 교원 단체가 나서면 못 할 일도 아니다. 교육부의 정책에 대항하거나 사회적인 이슈를 내세울 때에는 막강한 조직력을 보이는 교원단체가, 이처럼 자기 본연의 임무인 공교육을 살리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이유를 이해하기 어렵다. 다 쓰러져 가는 공교육을 어느 한 집단이나 하나의 정책이 일으켜 세우기는 어렵겠지만, 적어도 교육 담당자들은 자기가 할 수 있는 일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오세정 서울대 교수.물리학